감상글(시)

고욤감나무를 슬퍼함 / 나태주

톰소여와허크 2014. 5. 14. 11:21

 

고욤나무 꽃과 열매, 사진 출처: http://www.indica.or.kr/xe/plant/3742643

 

 

 

고욤감나무를 슬퍼함 / 나태주

 

 

고욤감나무 한 그루가 베어졌다 올봄의 일이다

해마다 봄이면 새하얀 감꽃을 일구고

가을이면 또 밤톨보다도 작고 새까만 고욤감들을

다닥다닥 매다는 순종의 조선감나무

아마도 땅주인에게 오래 동안 쓸모없다

밉게 보였던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이 나무를 안다

30년 가까운 옛날의 모습을 안다

지금 스물여덟인 딸아이

저의 엄마 뱃속에 들어있을 때

공주로 학교를 옮기고 이사할 요량으로 이집 저집

빈방 하나 얻기 위해 다리 아프게 싸돌아다닐 때

처음 만났던 나무가 이 나무다

빈방이 있기는 하지만 아이 딸린 나 같은 사람에겐

못 주겠노라 거절당하고 나오면서 민망하고

서러운 이마로 문득 맞닥뜨린 나무가 바로 이 나무다

 

저나 내나 용케 오래 살아남았구나

오며 가며 반가운 친구 만나듯

만나곤 했었지 꽤나 오랜 날들이었지

그런데 그만 올봄엔 무사히 넘기지 못하고

일을 당하고 만 것이다

둥그런 그루터기로만 남아 있을 뿐인 저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다

나의 일이고 당신의 일이다

 

고욤감나무시여

나 홀로 오늘 여기와 슬퍼하노니

욕스런 목숨을 접고 부디 편히 잠드시라.

 

- 『너도 그렇다』, 종려나무, 2009.

 

*   어떤 기관의 장이 바뀌면서 멀쩡하게 있던 나무의 운명도 달라지는 걸 보았다. 건물 후원의 향나무는 1층 높이에 미치지 못하는 지점에서 목이 베어졌고, 신수 훤하던 목련은 창 쪽으로 뻗은 가지의 절반이 날아갔다. 이유는 창문으로 들어오는 해를 가린다는 것이다. 일부러 커튼까지 치는 현실을 생각하면 너무 섣부른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빛의 양을 조절해 주고, 그늘과 산소 그로 인한 휴식을 주고, 새를 불러 귀를 즐겁게 해주는 역할도 분명 있었을 텐데, 고민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구성원의 의견은 물었는지, 나무의 의견은 들었는지 묻고 싶은 마음이 있다.

   고욤감나무의 주인에게 나무의 소유권에 대해 따질 마음은 없으나 그의 결정이 못내 서운한 감이 나에게도 있는데, 시인의 마음은 더욱 애틋할 것이다. 어려운 시절에 이마를 맞댄 인연에다 오가며 눈인사까지 하며 오래오래 정을 둔 사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에겐 나무 한 그루가 아무 쓸모없이 걸리적거리는 대상일 수도 있지만, 또 어떤 사람에겐 나무가 웃어른 같고, 어머니 같고, 친구 같고, 말동무 같고, 그냥 편하기도 하고 좋기도 한 사이이기도 할 것이다. 한 그루 나무가 탐이 나서 필요도 없는 집까지 덜컥 사고 말았다는 이야기도 흘려들은 기억이 난다. 이처럼 나무를 아끼는 마음바탕엔 생명 가진 것에 대한 존중이 있다. 최소한 생명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정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니 시인은 밑동 잘린 나무를 두고, “저것은/ 나무의 일이 아니다”라고 걱정하는 것일 테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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