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숙 작, <엄마 따라>, 2012.
옛집 꿈을 꾸다 / 전동균
생선 굽는 냄새 진동하는
비탈진 골목, 늙은 무화과나무 아래
박수근을 닮은 낯선 남자가
등 구부린 채
풍로질을 하고 있었다
가라고, 어서 돌아가라고
겨우내 얼음 빨래를 한 듯
붉은 손을 휘휘 내저으며
이제 곧 뒷릉 숲에서 여우가 울 때라고
여우가, 여우가 울면
망자(亡者)들은 길을 잃는다고
쾅, 대문이 닫힌 뒤
담 너머로 작은 상이 하나 넘어왔다
소금처럼 휜
고봉밥이
- 『거룩한 허기』, 랜덤하우스코리아, 2008.
* 꿈은 예전의 기억과 근래의 생각이 기묘하게, 좀처럼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조합을 이루어 나타나곤 한다.
시인은 언젠가 박수근 그림의 한 장면을 지나왔을 것이다. 시장 풍경과 마을로 이어지는 길과 나무 그리고 시골집을 배경으로 아낙과 아이, 노인 등 가난한 이웃의 모습을 주로 그렸던 박수근이다. 박수근 그림이 주는 향토적이고 서정적인 느낌을 갖고 있다가 시인은 자신의 옛집을 꿈꾸게 된다. 거기서 만난 “박수근을 닮은 낯선 남자”에서 왠지 시인이 익숙하게 알고 있을 것 같은 사람의 체취가 난다. 돌아가신 선친에 대한 그리움이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다.
아무리 그리워도 산 자와 망자(亡者)는 같이 섞일 수는 없다. 대문 이쪽과 저쪽으로 둘의 경계는 분명 나누어져야 한다. 망자는 떠나고 산 자는 꿈에서 깨어나야 할 텐데, 헤어지기 싫은 마음이야 오죽할까. 그 순간에 경계를 지우듯 담 너머 달이 성큼 들어선다. 제사상에 차려진 고봉밥 같은 달이다. 꿈인 듯 생시인 듯 환하고도 서러운 밥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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