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 / 전 향
두껍게 내려앉은 햇볕 속에서
텃밭의 상추를 뜯어
점심때 쌈을 싸서 먹는데,
한입 드시고 난 어머니께서
햇볕이 있을 때는
뜯지 마라 하신다
쓴맛이 난다고 하신다
넓고 푸른 잎들 속으로
반짝이며 힘차게 헤엄쳐 오르던 햇볕
예고 없이 툭 꺾였을 순간,
그 캄캄함이
입안 가득 고여왔다
- 『그 빛을 찾아간 적 있다』, 한국문연, 2012.
* 식물은 주로 낮에 빛 에너지를 받아들여 에너지를 축적한다. 물과 볕을 받아들이고, 온몸으로 “반짝이며 힘차게 헤엄쳐 오르”는 피돌기의 과정은 생명 가진 것의 환호작약이라 할 만하다. 그 생의 절정에서 “툭” 꺾인 목숨이라니! 그건 식물에게 -사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너무 가혹하지 않냐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쓴맛”의 이유를 알아챈 마음들이 있어서다. 식물이 죽음으로 보낸 신호를 따끔하게 받아들여할 할 텐데, 그마저도 놓친다면 그야말로 ‘절망’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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