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 이상국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개울물이 밤새 닦아놓은 하늘로
일찍 깬 새들이
어둠을 물고 날아간다
산꼭대기까지
물 길어 올리느라
나무들은 몸이 흠뻑 젖었지만
햇빛은 그 정수리에서 깨어난다
이기고 지는 사람의 일로
이 산 밖에
삼겹살 같은 세상을 두고
마천골 물푸레나무 숲에서
나는 벌레처럼 잠들었던 모양이다
이파리에서 떨어지는 이슬이었을까
또 다른 벌레였을까
이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에
누가 나의 이름을 불렀다
- 『집은 아직 따뜻하다』, 창비, 1998.
* 미천골이란 이름은 절에서 쌀(米 )씻은 물이 내(川)로 하얗게 흘러내렸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하는데 하찮고 천한 “벌레” 같은 삶이 모여드는 미천(微賤)이라도 좋았겠다 싶다.
저 아래 세상은 속을 지지고 뒤집는 일이 많다. 기꺼해야 한 점 숯으로 버려지기 일쑤인 “삼겹살 같은 세상”이다. 그 세상을 피하여 온 곳은 “작두날처럼 푸른 새벽”이 생명감을 한껏 돋우는 미천이다. 물푸레나무, 산새, 벌레들은 저 사는 일로 분주하긴 해도 머리 아픈 궁리도 없고 어떤 협잡도 없다. 시인은 비로소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보잘것없는 한 생명이 다른 생명을 부르는 소리를, 어쩌면 자신의 내면에서 나오는 소리를 처음으로 듣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미천골을 늘 생각한다 하더라도 삼겹살 세상을 쉽게 버릴 순 없을 것이다. 그곳에서도 고기 한 점 나누는 정이 분명 있을 테니.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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