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로자 / 김이듬
담배를 피우며 숲길을 걸었다
인적이 드문 숲 깊은 곳까지 왔다고 느꼈을 때
길을 차단하는 울타리가 있었다
먼저 머리를 난간 사이에 넣은 다음 양손으로 나무뿌리를 움켜쥔 채 난간에 낀 궁둥이를 계속 흔들며 비틀었다
이럴 만한 이유가 없지 않은가
여기나 저기나 뭐가 다른가
간들 뭐가 있겠는가
아는 사람을 만날 가능성은 전혀 없었고 나 혼자 너무나 낯선 도시에 떨어졌다
누구도 기다릴 리 없는데 둥둥둥 두드리며 나를 부르는 환청이 있다
숲길은 작은 운하로 연결되었고
나는 다시 담배를 피우며 주변을 배회했다
강물은 더러웠고 인적이 없었고 저녁이 왔다
털썩 바위 위에 걸터앉았다
코앞에 안내판이 있었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발견된 지점이라 씌어 있었다
로자는 총살 당해 운하에 던져진 후 그 시신으로 이곳까지 떠내려왔나 보다
나는 한때 그녀를 흠모했으나 완전히 잊고 있었다
낯선 도시에서의 첫 산책은 거기까지였다
지금도 나는 계속 떠내려간다 둥둥
가끔은 틈에 낀 궁둥이를 빼느라 식겁하며
또 가끔은 회의적인 너무나 회의적인 생각을 한다
완전한 너무나 완전한 우연에 대해
그것을 필연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 관해
- 『베를린, 달렘의 노래』, 서정시학, 2013
* 로자 룩셈부르크는 여성 사회주의 이론가이자 운동가이다. 로자는 혁명이 무수한 실패를 거듭하면서 조금씩 가능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는데, 결국 혁명의 끝을 보지 못하고 노선을 달리하는 사회주의 우파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그녀의 꿈은 다른 누군가의 꿈에 영향을 주며 지금도 “둥둥” 흘러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낯선 도시를 산책하던 시인은 한때 자신이 흠모했던 로자의 흔적을 이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우연한 만남인지 필연적 이끌림인지 알 수 없으나 성급하게 “필연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시인은 회의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로자를 추억하게 된 것은 그것이 우연이든 필연이든 “길을 차단하는 울타리”를 무시하고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갔기에 가능했다. 금지된 것, 경계 지워진 것을 당위로 받아들이지 않고, 경계 밖으로 한 발짝 내딛고 궁둥이를 빼내는 시인의 성의를 높이 사고 싶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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