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법(落法) / 권순진
유도에서 맨 먼저 익혀야할 게 넘어지는 기술이다
자빠지되 물론 상하지 말아야 한다
메칠 생각에 앞서 패배를 자연스레 받아들이는 훈련
거듭해서 내동댕이쳐지다 보면 바닥과의 화친이 이루어진다
몸의 접점이 많을수록 몸은 안전해지고
나아가 기분 더럽지 않고 안락하기까지 하다
탁탁 손바닥으로 큰소리 장단 맞춰 바닥에 드러눕는 것이
더러는 보는 이에게도 참 흐뭇하다
머리를 우선 낮추고 몸을 둥글게 말아 구르니
넘어진들 몸과 마음이 상할 리 없다
어깨에 얹힌 힘을, 발목에 달린 힘을, 모가지에 붙은 힘을
죄다 빼고 헐거워져서야 마음도 둥글어진다
그때서야 엉덩살은 왜 그리 두껍게 붙어있는지
넘어지고서도 다시 일어서야할 생각은 왜 솟아나는지
누운 자세에서 깨달으며 무릎 세운다
- 『낙법』, 문학공원, 2011.
* 인라인스케이트를 배울 욕심에 보호 장구 없이 엄벙덤벙하다가 뒤로 자빠지는 바람에 사기가 급전직하로 꺾인 기억이 있다. 인라인스케이트는 제 부주의로 혼자 넘어지고 유도는 상대에 의해서 바닥에 메쳐진다는 점에서 다르지만 잘 넘어지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은 다르지 않다.
낙법 기술은 몇 번 꼬라박고 무릎 까지는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야 습득이 빠를 텐데, 유연성을 잃은 몸은 넘어지는 게 점점 두려워진다. 바닥을 뜨고 싶은 만큼, 바닥에서 떠 있는 만큼 떨어지는 두려움도 커질 것이란 생각도 드는데 시인은 오히려, 떨어져서 그 바닥과 "몸의 점접이 많을수록" 편안해질 것이라고 안내한다. 지는 법도 배우고 바닥이 바탕임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낙법은 상대를 제압하는 절정의 기술은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에서 그 최악을 면하게 할 뿐 아니라 몸을 둥글게 말아 “몸과 마음이 상할 리 없”게끔 하는 것이니 이만한 기술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바닥을 “탁탁”치고 아무렇지도 않게 새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니, 열 일 제쳐 놓고 낙법부터 배워야 마땅하다.
강호 숨은 고수를 찾아 바닥 경(經)을 두루 닦은 나머지 "엉덩살은 왜 그리 두껍게 붙어있는지"를 간파한 시인으로부터 이미 낙법의 상당한 지경을 배웠지만 나머지 부분은 혼자 엉덩이 아파가면서 익혀야 할 것이다. 굳이 배움을 하나 더 청한다면, 유도 기술 중에 낙법을 기다렸다가 아예 상대를 끝장내려는 굳히기라는 기술도 있는데, 이는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지 낙법의 고수에게 묻고 싶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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