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박꽃나무 (사진 출처: http://cafe.daum.net/inyeung/9CdF/5638?q=%C7%D4%B9%DA%B2%C9%B3%AA%B9%AB&re=1 )
은갈치나무 / 박정남
속리산에 오니 그때 보던 함박꽃이 피었다 난의 향기를 지녀 목란이라고도 불렀는데, 어디서 갈치 비린내가 따라온다 가지를 꺾어 물속에 넣으면 물이 푸르게 된다는 물푸레나무 하늘도 뜨개질하여 온통 연녹색인데, 바로 문장대 삼강오륜을 싼 옛 종이에까지 배어들었는지 문장대석천을 내려다보는데도 제주 은갈치 비린내다 누가 갈치 도시락을 싸왔다 코앞에 갈치 한 마리, 산속을 헤엄쳐 다니는 갈치 몇 마리, 종일 속리산에 누가 풀어놓은 갈치 비린내를 생각했다 세조의 문장에까지 끼어든 비린내, 산 푸른 잎 냄새, 산목련 냄새, 나무들에 갈치가 피었다 나무들이 솟대인 양 갈치를 달았다 온 산을 헤엄쳐 다니는 은갈치 무리 갑자기 싱싱하고 달다 이제 갓 물오른 스무 살 난 여자를 꽃피우고 서 있는, 흰 꽃들의 키 큰 은갈치나무들
- 『꽃을 물었다』, 2014, 문학의전당.
* 시인이 만난 함박꽃나무는 “난의 향기를 지녀 목란”으로 불리며 북한의 나라꽃으로 알려져 있다. 산에 피는 목련이라 해서 산목련으로 불리는데 목련과 다르게 잎이 먼저 나고, 5〜6월이 되어야 개화한다. 개화 직전의 꽃봉오리 모습이 붓을 닮았다 해서 목필(木筆)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 시기에 꽃봉오리를 거두어 약재로 쓰는데 특히 콧병에 좋다고 한다. 산목련만의 특유의 향에 비린내도 포함되는지 나중에라도 꼭 확인할 일이지만 콧속을 화하게 하는 뭔가를 시인이 느낀 것은 틀림없다.
은갈치 도시락을 실제 싸 왔는지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조금 엉뚱한 데서 오감은 더욱 즐겁다. 때마침 비라도 한번 지난 뒤라면 산안개 따라 물비린내, 갈치 비린내, 사람 냄새, 흙냄새, 나무 냄새, 꽃 냄새 마구 어울려 놀 텐데 그럴수록 상상의 진자는 더 크게 움직일 것이다. “온 산을 헤엄쳐 다니는 은갈치 무리”에서 “물오른 스무 살 난 여자를 꽃피우고 서 있는” 데까지 황홀하게 달려볼 수 있는 것이다.
‘함박꽃나무’는 이제 ‘은갈치나무’란 이름도 얻었다. 사물에 그럴듯한 이름을 부여하고 이에 공감하게 하는 건 시인의 능력이다. 앞으로 산을 헤엄치는 은갈치나무를 만나거든 바람에 이파리를 반짝이는 은사시나무의 배다른 동생쯤으로 봐주어도 좋지 않을까.(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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