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밤 개펄 / 황학주

톰소여와허크 2014. 10. 22. 18:12

밤 개펄 / 황학주

 

 

손전등 불빛에

조만조만한 눈두덩들이

켜진다

 

아주 오래 전에 흘러온 구멍도

하나, 아기처럼

숨을 삼키고 있다

 

야삼경 개펄에

세상 참 바둑하다

 

갯완두꽃 앞으로

어지럽도록 뿌려진 구멍들

간격이 맞는다

백로 울음소리까지 폭삭 익어 들어있다

 

농게, 갯지렁이 물떼새의 길 복판에 지은

인간의 집을 설명하려니

 

농게, 갯지렁이, 물떼새 말고도

다들 안 끼워주려는 눈치이다

이런 미혹이 처음인 양

나 구멍에 입을 꽂는다

 

개펄가문에 입적한 구멍의 하나로

생각하고 싶어지는 밤

 

- 『노랑꼬리 연』, 서정시학, 2010.

 

 

  * 개펄의 무수한 생명들 - 낙지, 짱뚱어, 조개, 다슬기, 농게, 갯지렁이 등등 - 중에 갯지렁이와 농게는 야행성이란다. 이 조무래기 생명들이 개흙 안팎으로 들거나 나는 모습, 개흙을 먹고 내지르는 풍경을 시인은 “바둑하다”고 표현한다. 사전에 없는“바둑하다”는 말을 바지런하고 수두룩하다는 말로 대충 넘겨짚다가 “구멍들/ 간격이 맞는다”는 표현에서 바둑판을 생각지 않을 도리가 없다. 야밤에 자유를 만끽하는 갯지렁이와 농게, 이를 노리는 물떼새의 모습에서 치열한 생존의 현장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시인에게 개펄의 풍경은 여전히 매력적인 데가 있는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개펄에 사랑과 생업과 자유는 있어도 계산과 구걸과 사기와 착취는 없을 것이다. 최소한의 생계 그 이상을 생각하며 날마다 싸우고 상처 주고 상처 입는 “인간의 집”은 개펄에 어울리지 않는 게 당연하다.

  다만, 개펄의 무수한 생명에 대해 예의를 갖추어 입을 맞춘 시인인 만큼 “개펄가문에 입적”하는 순위에서 뒤로 밀려나거나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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