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둥둥…… / 박순호

톰소여와허크 2014. 11. 11. 11:35

둥둥…… / 박순호

 

 

날이 습하였다

잠들면 가벼워 가벼워지겠지, 둥둥……

잠을 자고 일어나도 가시지 않는 두통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잔뜩 물먹은 구름들도 무거움을 비워내고 싶은지

지상에 낮게 발목을 걸쳐놓고 움직이지 않았다

저 먹구름 위를 마구마구 밟았으면 좋겠어

어느 정도 물이 빠지고 나면, 둥둥 두둥둥……

그다음 쥐어짜서 탈탈 털어 말려보는 건 어떨 것 같아

망치로 머리통을 부수고 싶다는 생각 따윈 하지 않겠지

문득 이성에 눈을 떴던 때가 우기였다는 생각이 났다

비가 쏟아지던 거리가 한눈에 내다보이는 카페였다

습기에 더욱 도드라진 곱슬머리가 싫다는 이유로

입꼬리를 올리며 일어선 그녀

빗방울이 끝없이 튀어 오르고, 둥둥 두둥둥 둥둥……

밤새 준비했던 말들을 하나씩 빗속에 던졌다

수천, 수만의 물방울들이 머릿속으로 튕겨 들어와

먹구름을 만들어냈다

엉망진창, 퍼덕퍼덕, 첨벙첨벙…… 머리가 지끈거렸다

비가 올 때 두통에 시달리기 시작한 건 그때부터였다

거리에는 접힌 우산을 든 모자 쓴 사람들이 몇몇,

지렁이 한 마리가 보도블록 위를 오체투지로 밀며 멈춘 자리

어긋난 보도블록 한 장에 빗방울이 주춤거리는가 싶더니

길 가던 사람들이 동시에 우산을 받쳐 들었다

아스피린이 빗물에 녹은 것처럼 길이 미끄러웠다

어서 집에 가야해,

둥둥 두둥둥 둥둥 두둥둥……

 

- 『헛된 슬픔』, 삶이보이는창, 2011.

 

 

  * 안 먹고 살 수 없으니 먹는 문제로 다투어야 하고, 혼자 살 수 없으니 주변 사람들과 관계 맺고 소통해야 한다. 다들 소원하는 바는 먹는 일(생계) 걱정이 없는 것일 테고, 이왕이면 좋은 관계 속에 사는 거다. 문제는 내 뜻대로 내 의지대로 삶이 움직여 주지 않는다는 점인데 한번 꼬여들기 시작하면 “엉망진창”으로 내몰리기 쉬운 게 인생이다.

  시인은 고백한다. 그 엉망진창의 단초 하나가 어긋난 사랑이었다고. 사랑이 이후의 삶을 다 어긋나게 한다거나, 오직 두통과 아스피린만 안겨 주었다면 괜찮은 소설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현실적이지는 않다. 다만, 시인은 크게 앓은 그 시점부터 시작된 두통이 비가 오는 일처럼 예사롭게 진행됨을 말하는데, 과거의 연장선상이라기보다는 삶의 도처에서 부딪히는 일들로 인해 현재형으로 갖게 되는 두통으로 이해하고 싶다. 몸을 눕힐 수 있는 “집”이 치유의 장소로 기능하는 것도 믿음이 간다.

  둥둥, 머리를 울리는 두통은 싫지만, 두통거리 때문에 타인의 심중과 세상의 이면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러니  두둥둥 소리 없이, 두통 없이 산다고 해서 마냥 좋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일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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