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최금진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비롯되었다는 이십만년 전에
나는 원숭이 비슷한 우리 할아버지 고환에 담겨
말하는 꽃도 보고 텔레파시 하는 뱀도 보고
움막에서 어멈들이 어, 하면 아범들은 아, 하면서
낮이고 밤이고 인류를 길어올려 흘려보냈겠지
내 본향이 아프리카라 생각하니
평소 안 좋아하던 파프리카도
적도에 걸린 생소한 탄자니아, 소말리아도 예뻐 보인다
나는 얼마나 많이 흘러온 건가
얼굴 시커먼 우리 할아버지는 긴 막대기랑 돌덩이 서너 개 들고
얼마나 오래 걸어 전라남도 화순에 와서 화순 최씨가 되었던 걸까
내 이름을 스와힐리어로는 뭐라 할까
우리는 형제니까
아동복지기금도 내고 기아 난민도 돕고
아프리카에 호적을 두었으니
나도 늙으면 아프리카에 가고 싶다
어쩌면 신께서 철조망을 쳐놓은 성경의 에덴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십만년도 더 먹은 우리 할머니가
축 늘어진 가슴을 출렁이며 날 알아보고는
나를 무릎에다 눕히고 자장가를 불러주실까
이 세상에 없는 새의 언어로, 나무의 모국어로
아프리카, 아프리카, 너무 늙은 나를 안고 안타까워해주실까
- 『사랑도 없이 개미귀신』, 창비, 2014.
* 나는 교생실습을 인근 학교로 가지 않고 아프리카로 갔다. 물론, 꿈속의 일이다. 소싯적 지나왔던 타잔, 솔로몬의 동굴, 동물의 왕국 등의 잔상이 꿈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하지만, 대충 읽은 프로이트를 인용하면 억압된 심리가 어떤 식으로든 투사되었을 것으로 본다. 현실에서 야기된 결핍과 불안을 안고 가려는 마음과 멀리 떨쳐내고 싶은 마음이 무의식 속에 낑낑거리다가 수면 위로 잠깐 나왔을 거라는 분석이다.
아프리카가 인류의 시원이기에 몸의 인자가 자신의 본향에 이끌리는 것이라 생각하는 시인도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자신의 현재적 결핍 상태를 투사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축 늘어진 가슴”의 할머니가 마술의 손으로 쓰다듬어 주는 곳이어야 하고, “새의 언어로, 나무의 모국어”로 소통하는 원초적이고 이상적인 지향처이어야 한다. 시인도 안다. 자신이 소망하는 바는 “이 세상에 없는” 것임을. 아프리카로 날아간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도 아니기에 “아프리카, 아프리카”를 “아프니까, 아프니까”로 읽어도 그만이다.
그럼에도 “아프리카, 아프리카” 거듭 말하게 됨으로써, 무의식 저 깊은 곳을 어루만지는 힘이 느껴진다. 문득, 당신에게 또 나에게 말을 건네고 싶다. (스와힐리어로) “하쿠나 마타타”.(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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