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꿈의 환전소 / 안현미
그 이야기에 따르면 그 꿈의 환전소는 도서관 가는 길에 있다고 한다 그곳에는 도깨비방망이를 잃어버린 이상하고 어이없는 도깨비들이 죽은 나무나 들여다보면서 일년 내내 주문만 외우고 있다고 한다 시 나와라 뚝딱! 씨 나와라 뚝딱! 이상하고 어이없이 아름다운 그 환전소에는 슬픈 것들이 그리운 것들로 옮겨가 앉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나가도 아무 일도 일어나선 안되는 듯 절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이상하고 어이없는 도깨비들은 계속 이상하고 어이없이 아름다운 나라에서 뚝딱뚝딱하면 시가 나오고……
그 이야기의 또다른 판본에 따르면 그 꿈의 환전소는 악마와 천사의 거리만큼 떨어진 곳에 있다고 한다 그 옆에는 한그루 거대한 나무가 있는데 그 나무는 자신의 그림자를 일년 내내 들여다보면서 09시부터 18시까지 매일매일 서류를 작성하고 있다 지겹지도 흥겹지도 않은 나라에서 이상한 것은 그 나무 그림자에선 일년 내내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간이 도깨비처럼 나타나 일년 내내 일요일을 환전해주고……
- 『사랑은 어느날 수리된다』, 창비, 2014.
감상- 시는 현실에 없는 것을 생각하게 하거나 역으로 현실을 잊게끔 하는 기능도 있다. 현실적 가치를 상실한 “죽은 나무”에 신성을 부여하고 의지하는 것도 도깨비나 시인 말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쓸모없는 것에 집착하면서도 새로운 것을 환기하는, 소모적이면서도 생산적인 작업이 수시로 일어나는 이 곳을 시인은 “이상하고 어이없이 아름다운” 꿈의 환전소로 명명한다.
생각하면, 시(詩)라는 것도 현실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말의 집(言+寺)을 짓는 것이다. 작품에 반영된 현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시인의 눈을 통해서 선택되거나 걸러짐으로써 현실의 단면을 더 특징적으로 드러내게 된다. 마치 환전소를 거쳐 필요한 것을 얻는 과정과 빼닮았다.
시인이라면, 환전소를 거친 시들이 “씨”처럼 생명을 품고, “씨”처럼 힘 있기를 꿈꿀 것이다. 환전소 옆 “거대한 나무”도 “일년 내내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간”을 만들어내는 조력자다. 매일매일의 노동을 “일요일”로 환전해주니 퍽 다행이기도 하다. 공일이 없는 세상은 상상만 해도 캄캄하고 답답하다. 평일을 휴일로, 노동을 휴식으로 환전하는 게 꿈이 아니라 주4일제 시스템으로 정착되길 바란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많이 도서관을 찾고 시를 찾고 양식을 쌓으며 언어의 집을 풍성하게 가꾸게 될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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