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저울에게 듣다 / 문동만

톰소여와허크 2014. 12. 3. 15:51

 

 

저울에게 듣다 / 문동만

 

 

아버진 저울질 하나는 끝내줬다

파단 마늘단, 어머니 무르팍에서 꼬인 모시꾸미도

오차 없이 달아내셨다 저울질 하나로 품삯을 벌어오던

짧은 날도 있었다 대와 눈금이 맨질맨질해진 낡은 저울

아버지가 세상에서 가장 정확히 볼 수 있었던 건

그 눈금이 아니었나 싶다

내게 평을 맞추어 제 눈금을 찾아가는 일이란

아버지가 먹고살 만한 일을 찾는 것만큼 버거운 일이다

균형이란 무엇이고 치우침이란 무엇인가 그런 머리로

내 혼동의 추가 잠깐씩 흔들린다

그러나, 저울을 보는 눈보다는

치우치는 무게이고 싶다는 생각

무게를 재량하는 추보다 쏠리는 무게로

통속의 추들을 안간힘으로 버둥거리게 하고픈

그 변동 없는 무게들을 극단으로

옮겨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벼우나 무거우나 역동의 무게로 살라는

이젠 팽개쳐져 아무것도

가늠치 못하는 녹슨 저울에게

지청구 한토막 듣는다

 

- 『그네』, 창비, 2009.

 

 

 

  * 시인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저울은 대에 눈금이 새겨져 있고, 추가 매달려 있는 대저울이다.(손에 들고 이용하는 저울일 경우 손저울이라고도 한다). 대의 한 쪽 끝에 있는 접시나 고리에 물건을 얹고 반대편에 추를 옮겨가면서 균형을 잡고 눈금을 읽는 식이다.

  아버지는 평을 맞추어 물건의 눈금을 정확히 읽었지만 삶은 줄곧 고단했을 거다. “무게를 재량하는 추”가 얼추잡은 대로 “변동 없는 무게”로 지나왔기 때문이다. 아들은 눈금으로만 표식되는, 이 견고한 균형을 깨고 “쏠리는 무게”로, “역동의 무게”로 살고 싶어 한다. 빈부로 고정된 생계의 틀, 좌우로 넘지 못하는 이념의 틀을 확 무너뜨리는 속도이자 운동이고 싶은 걸까.

  “녹슨 저울”의 “지청구”는 눈으로, 머리로, 관념으로 수치적 균형만 잴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부대끼며 중심을 잡으라는 말씀으로 들린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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