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문화재청 자료
나무 하나를 사랑했네 / 이동훈
푸른 물 듣는 물푸레나무 같은
여자가 내 마음에 살았네.
술집에서 배운 건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거였네.
누군 에누리 생각해서 열댓 번이라도 찍으라고 했지만
두어 번에 가진 힘을 다 써버리고
낭패감에 술만 펐네.
물푸레나무 같은 여자는
미끈한 몸을 구름까지 뻗치며 점점 요염해지고
새 한 마리 푸르르 떨고 나갔네.
나무 하나를 기리는 건
운명일 수도, 우연일 수도 있지만
무딘 연장과 튕겨 나오는 자존심은 지옥이었네.
술로 자빠져 누운 날
대차게 굴던 물푸레나무 같은 여자가
금도끼에 우듬지부터 꺾더라는 소문을 들었네.
밑동을 지나는 물길도, 지켜보는 이마도
퍼렇게 젖게 했던 물푸레나무
그 여자를 그리는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되고
말똥말똥 생각한 것은
열 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있고
한 번 찍어 넘어갈 나무 있다는 거였네.
찍기 나름이지만 나무 나름이기도 하고
내가 그런 나무일 수도 있다는 거였네.
물푸레도 뭣도 아닌
생으로 버티고 속없이 꺾이기도 하는.
- 월간 《우리시》20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