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시

청도(淸道) 기행

톰소여와허크 2014. 11. 15. 20:19

 

 

2009. 3월 청도역

 

 

2014. 10월 청도역

 

 

청도(淸道) 기행 / 이동훈

 

 

청도, 한 음절씩 소리 낼 것 같으면 뱃속에 든 맑은 바람이 입술 열고 한데로 나간다. 팔조령 고갯길에 혼자 쉬어가던 날들의 바람소리는 터널로 내려와 울고, 그 바람 맞으며 선암서원 배롱나무는 붉어지고, 적천사 은행나무는 노래지고, 운문사 처진 소나무는 세월 모르고 푸르기만 하다.

 

아지랑이 필 땐 남산 구름에 눈 주고, 더운 날엔 낙대 폭포에서 물맞이하고, 갑작바람 이는 날엔 읍성에서 달맞이하고, 길 따라 창녕, 밀양, 언양까지 다녔다. 그 사이에 애인도 생기고 아들딸도 얻으니 청도는 언제든 바람내는 고장이다.

 

제철에 산나물 나고 철철이 복숭아 익고, 집집마다 감나무를 식구로 둔 청도. 민물 잡어처럼 드세고 날렵한, 바닥에 익숙한 청도 사람들. 오일장 추어탕으로 섞여든 잡어들이 감칠맛 내듯 이것저것 니것 내것 따지지 않는 허술한 잇속으로 청도는 꽃바람 속이다.

 

역 앞, 기적 소리에 냅뛰어 가던 아이가 기차 사라진 저편을 보고 있다. 오래전 누군가의 모습으로 그렇게 오래오래 서 있다. 청도, 나직이 소리 낼 것 같으면 미처 입으로 새지 못한 바람이 소 울음처럼 깊은 곳에서 논다.

 

'자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위층 아래층  (0) 2015.03.19
나무 하나를 사랑했네  (0) 2015.01.22
달맞이꽃  (0) 2014.08.10
이인성과 이쾌대  (0) 2014.03.07
바리데기에게  (0) 2014.03.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