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포리로 가겠다 / 이향지
띠포리는 무게로 산다
띠포리 값은 성깔 값이다 띠포리 값은 눈알 값이다 띠포리 값은 허장성세, 은빛 비늘 값이다 띠포리 값은 턱없이 뻣뻣한 등뼈 값, 노골노골 꺾이지 않는 늑골 값이다
물 있을 때의 헤엄이다
띠포리는 울음을 그친 것이다
알맞게 마른 띠포리
그물에 걸려 바다 밖으로 내팽개쳐질 때
무더기로 은퇴당한 고향 띠포리
띠포리 값은 두고두고 우려먹는 국물 값이다
포획의 기쁨도, 그물 안의 비상도, 지분지분한 이익에 끌려 속수무책 팔려가는 신세도, 띠포리의 것은 아니다
헤엄 끝난 육체에서
마른 고기 한 점 발라 고추장에 찍어 먹이는 맛,
한 젓가락도 못 되는 빈약한 몸뚱어리
져 나르거나 퍼 나르거나 상관할 바 없다 싶을 때,
얼룩 많은 누군가의 비늘이라도 닦아 줄 수 있다면
그 띠포리는 잘 산 것이다
띠포리로 가겠다
- 『햇살 통조림』, (주)천년의시작, 2014.
* 띠포리는 시인의 고향인 통영 바닷가 마을이라고 해도 좋겠지만, 사실 국물용 멸치를 일컫는 말이고 더 정확히는 밴댕이의 다른 말이다.(밴댕이는 멸칫과가 아니고 청어과로 분류되어 있다).
잔 멸치에 비해 덩치는 크지만 실속이 없어서, 변변찮은 사람을 두고 ‘띠포리 같다’는 말로 면박을 주기도 했단다. 아마도 뼈가 있어 손질이 어려운 데다 너무 많이 잡히는 까닭에 조그만 멸치에 밀리는 수모를 겪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어디든 인생역전이 없을까. 젓갈이나 볶음용으로 적당치 않지만 대신에 국물 우리는 데 이만한 게 없다는 소문을 타고 쓰임새가 늘어나고 있다. 지게나 양동이로 “져 나르거나 퍼 나르거나” 하면서 더러 거름용으로 쓰이기도 했던 시절은 이제 옛말이 되어 가는 것이다.
시인의 띠포리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인생의 한 고비를 넘어온 시인과 헤엄을 끝낸 띠포리가 마주하는 순간, 시인은 자신과 띠포리와 또 “무더기로 은퇴당한” 사람들과의 경계를 지운다. 열심히 살았으니 되었고, 긴 유영 끝에 “얼룩 많은 누군가의 비늘이라도 닦아” 주는 마음이 서로 간에 있으니 잘못 산 것은 아니다.
마침내 “띠포리로 가겠다”는 시인을 따를 건가 말 건가. 주말에 띠포리 국물에 국수를 건져내면서 곰곰 생각해볼 일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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