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예스터데이 / 박지우

톰소여와허크 2015. 1. 30. 23:10

예스터데이 / 박지우

 

 

아버지의 안경은 웃음을 지웠어

내 손등에 솟은 사마귀는 흉터를 남겼지

적막은 눈먼 고양이에게 뛰어들고

나를 보고 있는 창문에 지문을 찍어대

변덕스러운 새소리가 사라졌어

구름을 먹던 골목에도 새의 발자국은 없어

아버지의 안경이 웃음을 삼킨 후

모든 게 달라졌어

나는 기차 레일 위에 눕곤 해

어릴 적 흐린 기억들이 차올라

안경을 쓴 그림자가 담벼락에 걸려 있는 날

수도꼭지에서 어머니가 콸콸 쏟아져

서랍 속에서 말을 잃어버린 채

눅눅한 냄새를 풍기며

내 잠의 행간을 떠돌아다니는

아버지의 안경이 너무 가벼워

 

이제, 눈물을 꽉 잠그고 싶어

 

- 『롤리팝』, 북인, 2012.

 

 

  * 팝송을 듣지 않고 자랐지만 비틀즈의 <예스터데이>는 가사까지 찾아보고 흥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시인도 노랫말을 염두에 두고 제목을 뽑지 않았을까 싶다.

  “Why she had to go, I don't know, she wouldn't say”에서 말없이 떠나는 그녀를 운명으로 읽어도 좋지 않을까. “I said something wrong, now I long for yesterday”에서 자신이 뭔가 잘못 말한 게 있지만 이미 그녀는(운명은) 돌이킬 수 없는 대상이 되었으며 과거는 그리움으로 남아있단다.

  시인이 기억하는 과거는 슬픔과 상실의 이미지가 더 유난하다. 안경은 아버지를 가장 잘 드러내는 상징일 것이고 한때 가장의 여유와 웃음이 안경에 묻어있기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안경에서 웃음이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안경을 쓴 그림자가 담벼락에 걸려 있”는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직면한다. “수도꼭지에서 어머니가 콸콸 쏟아”지는 것은 가족 전체에 닥친 불운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지만 시간은 그 불운에서 멈춰있는 법이 없다. 아픈 일도 추억이 되고, 불운은 어제가 되고 만다. 지나간 일은 돌이킬 수 없지만 말 그대로 지나간 일로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Oh, I believe in yesterday”다. “아버지의 안경”이 주는 슬픔의 무늬와 얼마간의 위로와 사랑이 섞이면 그건 그리움이란 새로운 무늬로 화학반응을 일으키는 일이 될 것이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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