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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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붕숭아 / 차영호
개울물에 머리를 감는
청자빛 이내
그리움이
물봉선처럼 제풀에 물러터지면
큰물이 진다
모진 업장 뿌리깊어
가물어도 개울바닥에 내려가지 못하고
물 불어도 둑 위로 피신할 수 없는
붙박이별
가녀린 손결로 더듬더듬
물때 썰 때 미리 알아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걸
자꾸
물똥을 튀겨
몸뚱어리 헹구며 노래를 한다
슬픈 눈으로 세상을 보면
아름답게 보여요
- 『어제 내린 비를 오늘 맞는다』, 도서출판 전망, 2003.
* 1912년 선교사였던 남편 크레인을 따라 조선에 왔던 플로렌스(Florence H. Crane)는 한국 야생화에 심취하여 『Flowers and folk-lore from far Korea』(1931)를 출간했다. 거기 소개된 물봉선 이야기는 한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을 정도로 인상적이다. 소녀의 노래를 좋아하던 밤하늘의 별이 있었다. 별은 소녀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 몸의 균형을 잃고 그만 지상으로 떨어져 죽었고, 이를 슬퍼한 소녀가 별을 묻어주었더니 이듬해 그 자리에 물봉선이 피었다는 전설이다. 플로렌스의 이 책은 『한국의 들꽃과 전설』(최양식 역, 2008)로 뒤늦게 번역되어 나온 만큼 시인이 이 전설을 들었을 가능성이 적지만,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물봉선을 붙박이별로 본 시인의 상상력이 우리의 잊혀진 감성을 찾아낸 듯하여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봉선은 산골짜기 물기가 있는 곳에 모여 핀다. 잎이나 꽃이 청청할 때도 있지만, 가물거나 물기가 지나쳐서 고깔처럼 생긴 꽃이 삭거나 물크러지는 모습도 종종 눈에 띄는데 시인은 이를 “제풀에 물러터지”는 그리움 때문이란다. “가물어도”, “물 불어도” 자리를 옮기지 않는 그리움이란 얼마나 깊은 것인가. 자리를 쉽게 옮겨가지 않는 데서 세태에 물들지 않으려는, 이해와 유불리에 따라 움직이지 않으려는 시인의 심지도 엿볼 수 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이 결핍의 자리를 긍정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똥이 튀어 오면 반갑게 맞아 노래하는 여유가 있기에 물봉선은, 붙박이별은, 시인은 마냥 외롭지만은 않은 것이다.
물봉선은 그리움을 안고 있다가 때가 되면, 그리움의 씨를 멀리 털어낸다. “슬픈 눈”은 그 그리움을 알아보고 자신의 것과 더불어 같이 연민하다가 놓아주기도 하는 시선일 것이다. 언제 물봉선을 만나면 별의 흔적을 찾아봐야겠다. 조금은 슬픈 눈을…… 잊지 말고.(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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