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http://blog.naver.com/mjfor12/130074909356
구름떡쑥 / 이종섶
한라산에서 보았다 구름이 구르고 있는 것을 구름은 덮지 않고 구른다는 사실을 그리하여 산과 언덕을 낮게 엎드려 구르면서 부드럽게 어루만지는 구름은 구르다에서 왔다고 정의한다 평지에서는 보이지 않고 높은 산에서도 찾을 수 없는 구름의 출생지도 바로 이 산일 거라고 추정한다 명사는 동사의 뿌리에서 나오는 것 구르다와 구름처럼 동사를 명사로 바꿔 이름을 정하는 것이 어디 구름뿐이랴 바라는 것이 많아서 온 세상에 구름을 데리고 돌아다니는 바람도 그런 것을 구름도 바람 같아서 어디 간들 구르지 않으랴 하늘에 가서 구르다가도 때가 되면 지상에 내려가 물이 되어 구르는 것일 뿐 언제 어디서나 구르기를 쉬지 않는 구름의 문법 그 비서(秘書) 한 권을 품고 한라산에서 내려온 뒤 나도 책을 끼고 살면서 구르기 시작했다 구르기 쉽게 내 몸의 뾰족한 것들을 보이는 것마다 꺾어버렸다 그렇게 구르다 보니 내 마음의 울퉁불퉁한 것들도 부드럽게 다듬어져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하여 높은 곳에서도 신나게 구르고 낮은 곳에서도 편안하게 구르다가 산을 만나서도 산을 어루만지듯 구르면서 오름 오름 오를 수 있었을 때, 비로소 구름의 생명을 얻은 증거로 구름떡쑥이라는 청정한 이름 하나 받을 수 있었다
* 구름떡쑥은 제주도 한라산의 높은 산, 건조한 풀숲에서 자라는 다년생 풀이다.
- 『바람의 구문론』, 푸른사상, 2015.
* 문자 생활 이전의 아득하고 아득한, 다양하고 다양한 말들을 고려할 때, 현재 사용하고 있는 단어의 어원을 분명하게 밝힌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불가능에 가까울 것도 같다). 사실, 어원이라고 믿고 있는 것도 대개 특정 지역의 언어생활을 반영한 경우가 많다. 그걸 단서로 다른 지역이나 후대로 퍼져나간 그럴듯한 근거를 더해서 어원이라고 주장하고 더러 공식화하는 것을 나무랄 일은 전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어원을 절대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당연히 아니다.
구름떡쑥, 구름꽃다지, 구름꿩의밥, 구름송이풀 등 식물 이름에 구름이 붙는 경우는 높은 산에 피거나, 꽃이 피는 형태(꽃차례)가 구름을 연상케 해서라는데, 시인은 구름떡쑥에서 또 다른 어원을 찾는다. 산꼭대기의 강포하거나 변화무쌍했을 비바람에 적응하면서 낮게 자리잡았을 구름떡쑥에서 전 생애를 두고 구르고 구른 흔적을 간파해 버린 것이다. 구름떡쑥을 사사(師事)한 시인은 “뾰족한 것”을 꺾고 “울퉁불퉁한 것”을 가지런하게 하고자 했던 자신의 내면까지 투사하기에 이른다. “구르기를 쉬지 않는 구름의 문법”을 독파하고 하늘의 구름과 땅의 구름(구름떡쑥)이 그 이치가 다르지 않고 서로 통하고 있음을 증명하는 데서 나는 시인이 내세운 어원을 두말없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남의 말 듣고 한양에서 삼 년 굴렀다는 바보 나무꾼을 이제 웃을 수 없겠다. 잘 익은 약쑥 같은 말씀, 굴러도 좋은 구름떡쑥 같은 말씀 들었으니.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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