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할매는 언제쯤 죽는데? / 김종필

톰소여와허크 2015. 7. 27. 22:35

 

 

할매는 언제쯤 죽는데? / 김종필

 

 

이불속으로 돌아오지 않는 영감이 그리울 때

술로 속에 불을 지른다는 할매는

절레절레 고개 흔드는 손자를 품에 안습니다

(아이…… 술냄새 나! 어, 할매 입속에 금 있다)

시들은 꽃잎 같은 할매의 입술을 들추며

버릇없는 손자는 손가락을 깊숙이 넣었습니다

할매는 행여 손가락을 깨물기라도 할까

입을 좀 더 크게 벌리고 손자를 껴안았습니다

(내 죽으머, 금니 니 가져 가래이, 내 새끼야)

손자는 금니를 하나씩 누르며 다짐 받습니다

(그카머, 할매는 언제쯤 죽는데?)

자다 죽으면 좋다 할매는 눈물나게 웃습니다

 

- 『어둔 밤에도 장승은 눕지 않는다』, 북인, 2015.

 

 

* 집에 막내가 할배 나이를 묻고 할배가 100살쯤 된다고 농쳤는지, “그러면, 할배 죽어야 한다”고 큰소리 내서 할배만 웃고 주위는 머쓱해진 일이 있었다. 위 시의 할매도 “버릇없는 손자”의 말과 행동에 “눈물나게” 웃는다. 아이의 꾸밈없는 천진과 순수를 할매가 꼭 껴안고 있는 풍경이니 이 기막힌 불경죄가 오히려 더없이 아름다운 장면이 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자다 죽으면 좋다”는 할매의 소원이 농담으로 읽히지 않고 상식으로 수용되는 분위기에 한 말 하겠다. 의료 복지가 지금보다 백배는 나아져서 아프면 죽어야지라는 말 대신에 아프면 치료받아야지라는 말이 상식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거다.

  상식이란 말도 상식을 깨는 말을 통해서 더 상식적인 것을 지향해 가기도 한다. 누군가의 버릇없는 말과 남다른 행동이 상식을 의심하게 하는 순기능도 있음을 생각하는 것이다. 이 시를 쓴 시인도 등단하지 않고 시집을 내면서 스스로 상식을 만들어가는 사람인 줄 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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