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놀라운 삶 / 나석중

톰소여와허크 2015. 11. 5. 16:26

놀라운 삶 / 나석중

 

육교 돌계단 틈새

기쁜 소식처럼 핀 작은 풀꽃*에게

나는 묻지 않는다

그간 당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를

문짝도 없는 당신 집 앞을

위태롭게 오르내리는 발걸음들

당신을 보고도 못 본 체 안중에도 없지만

비로소 오늘 낮 내가 당신을 보았고

오! 신묘하다, 신묘하다

당신의 삶을 들여다본 생각으로

지금

내가

불면의 밤을 뒤척이고 있으니

 

* 선주름잎

 

 

- 『풀꽃독경』, 북인, 2014.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 전문)의 시구처럼 작은 풀꽃이라도 “자세히”, “오래” 보면 더 잘 알게 되고, 그 앎이 깊어질수록 자기 안에 이해와 사랑의 폭도 커질 것이다. 인간관계도 다르지 않겠지만 ‘너’를 대하는 마음이 쉬이 건성이 되고 불쑥 사나워지기도 하는 요즘, 풀꽃에 마음 주고 말 건네는 시인의 기질이 귀해 보인다. 

  시인이 “돌이든 풀꽃이든 詩든 / 거기에 마음 앗기다 보면 / 백수 같은 외로움 맞아 놀아날 새 없네”(<풀꽃독경> 중에서)라고 했듯이, 시집에 돌과 풀꽃에 대한 시가 많은데 어느 날 “육교 돌계단 틈새”에서 발견한 ‘선주름잎’에 관한 이야기도 그 중의 하나다. 바로 이름을 불러줄 수 있는 것은 예의 “자세히”, “오래” 보아 온 사람의 특권이다. 몰랐을 때는 그냥 지나쳤겠지만 이제 그럴 수 없다. 어떤 연고로 여기 왔는지, 하필이면 발걸음 무서운 이 자리인지. 풀꽃의 생, 풀꽃의 자태, 풀꽃의 표정이 무연하지 않고, 이제 그 미래까지 마음이 쓰이는지 집에 와서도 주름 하나 짓고 있다.

  주름잎 가계를 들여다보니, 시인은 이미 두루 꿰고 있겠지만 주름잎, 선주름잎, 누운주름잎이 있다. 서로 비스름하게 생긴 것을 이렇게 세분할 필요까지 있나 싶다가도 사람도 이름이 다 다른데, 이 정도는 구별해 주어야 비로소 좀 안다 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감동도 감동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오듯이 “놀라운 삶”도 작은 것에 의미를 부여하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일 테다.(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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