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봄은 몸에서 핀다 / 홍해리

톰소여와허크 2015. 11. 10. 23:39

 

 

봄은 몸에서 핀다

- 치매행(致梅行) 99 / 홍해리

 

몸에 뿔이 돋아나면 봄입니다

뿔은 불이요 풀이라서

불처럼 타오르고 풀처럼 솟아오릅니다

연둣빛 버들피리 소리

여릿여릿 풀피리 소리

속없는 사람

귀를 열고 닫을 줄 모르는 한낮

봄은 몸에서 피어나는데

봄이 봄인 줄 모르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꽃이 꽃인 줄 모르는 사람 하나

있습니다.

 

- 『치매행(致梅行)』, 황금마루, 2015.

 

 

  * 임채우 시인은 발문에서 홍해리 시인을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수염 덥수룩한 노인에 견주며, “노인은 기력이 다하지 않는 한 바다로 나가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홍해리 시인에게 바다는 시(詩다). 험한 파도나 큰 물고기에 패배당할 시인은 아니지만 안에서 생긴 걱정이 격랑 되어 시인을 결박하고 상심하게 한다. 평생의 반려가 몸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몸에서 위로, ㅁ에서 ㅂ으로 싹(촉이라 해도 좋고, 뿔이라 해도 좋겠다)을 내는 게 봄인데, 시인의 가정엔 봄이 사라졌다. 시인은 평생의 업인 시로 다시 봄을 불러오려고 한다. 말문을 닫은 아내에게 “마지막 선물 한 편”(<마지막 선물> 중에서)을 안기려는 일심으로, 매화 벙그는 데까지 나아가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몸의 아픔은 어쩔 수 없는 것이어서, “묻노니/ 아내여,/ 봄이 오긴 오겠는가!”(<무제> 중에서) 탄식하며 몸과 봄 사이에, 불안과 희망 사이에 주저앉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끝내 뿔을 내서 봄으로 가려고 한다. “머잖아 봄이 오는 소리 보는 듯 들리겠다”(<겨울 들녘>중에서)며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앞서 ‘노인과 바다’에서 노인은 패배하지 않았지만 바다 역시 그저 아득할 뿐이다. 시인은 어쩌면 노인과 바다를 함께 바라보는 소년이고 싶을지도 모르겠다. 버들피리 불며 곡조 따라 떠다니고 싶은.(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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