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신 / 우영규
어스름에 매달려 울어대는
매미는 본디 북극의 새일지도 모른다
남루 한 벌 벗어 던지고서야 비로소
때 기다리는 저 몸짓은
밤을 날아 본향에 닿고 싶은
마지막 결행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미루나무 끝까지 오를 리 없고
목청 다해 울부짖을 수 없다
나도 본디 큰 눈의 사슴일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내게서 언제 강을 건너가
그리움처럼 웅크리고 앉은 저편,
부르면 오히려 멀어지는 행성을 바라보며
언제쯤이나 한번 닿아 보나
목 빼고 눈만 껌벅일 수는 없다
- 『꼰대』, 책나무출판사, 2015.
* 매미의 유난한 목청을 짝짓기를 위한 안간힘으로 받아들이는 게 일반적이지만 시인은 짐짓, “본향에 닿고 싶은/ 마지막 결행" 같은 것으로 울음소리의 의미를 상승시켜 놓는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리움의 저편을 쳐다보고 마침내 그쪽으로 발을 떼려고 하는 “큰 눈의 사슴”과 자연스레 연결시킨다. 매미보다 사슴이 시인의 화신(化身,분신)으로 선택된 것은 먼 데를 보는 눈과 긴 목이 그리움의 강도를 더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여담이지만, “슬픈 모가지를 하고 먼 데 산을 바라본다”(‘사슴’에서)에서 노천명이 노래했던 사슴은 백석을 염두에 두고 썼다는 설이 있다. 물론, “내 좋은 사람과 밤이 늦도록 / 여우 나는 산골 얘기를” (‘이름 없는 여인이 되어’에서)하고 싶었던 노천명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백석 역시, “나타샤와 나는 /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고 했지만 나타샤(자야든, 란이든, 노천명이든 그 누구든 간에)는 가까운 연인이 될 수 없었다. 어쩌면 소월의 시가 그랬듯이 그리운 것이 먼 데 있어야 시가 생기는지 모르겠다. 화신을 임에게 전하는 화신(花信)으로 읽어도 그만인 이유다.
다만, 시인은 수동적으로 마냥 기다릴 마음은 없는 모양이다. “마지막 결행” 뒤에 다가올 무엇이 살짝 궁금해진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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