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문주란 / 안재찬

톰소여와허크 2015. 12. 13. 09:15

 

사진 출처 : http://blog.daum.net/kheenn/15854731

문주란 / 안재찬

 

  어느 해 생뚱맞게 문주란이 두 개 꽃대를 올리고는 기고만장했다 나는 너무 신기해서 세상 살다보니 별스런 일도 있구나 감읍에 젖었다 그게 아니었다 그녀의 계산된 속셈을 알아차리지 못한 우둔한 심사가 원망스러웠다 이듬해부터 화려한 시대는 가고 그녀의 달거리는 멈춘 듯 해마다 봄은 돌아와도 십년이 지난 오늘도 불임의 시대를 미안도 없이 살아가고 있는 거다 내가 목동으로 이사 오면서 대방동에서 시집을 온 문주란 이제 매일매일 양식만 축내고 향기 잃은 남루한 얼굴을 마주하느니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저녁쯤 산자락에 버릴까 말까 머리 굴리다 아니지 아니지 이게 아니지 하나님이 오라고 손짓하는 그날까진 꼭 붙어서 살기로 금식 끝에 결단을 내렸다 내가 먼저 갈지 네가 먼저 갈지 부질없이 따지지 않기로 했다 요단강 뱃길도 울지 않기로 했다

 

- 『광야의 굶주린 사자처럼』, 고요아침, 2014.

 

 

* 문주란 하면, 가수 문주란만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알고 보니, 수선화과(난과가 아님)의 식물이다. 제주 토끼섬의 문주란 군락지는 천연기념물 19호로 지정되어 있다. 뭍이나 가정에서 식물이 자랄 환경을 알맞춤하기 어려우니 꽃이 귀할 법한데 시인의 가정에 어느 해 꽃을 피웠다는 거다. 그리고 그 “감읍”의 결과로 시인은 십 여 년 뒷바라지하는 신세란다.

한 번의 언약으로 혹은 한 번 마음 준 대가로 기본적 의리를 지킬 수 있다면, 사람 사이 작은 갈등은 어쩌지 못하더라도 큰 평지풍파는 피해갈 것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언약이 깨지고 마음이 뒤바뀌는 우여곡절이 많다. 내가 가수 문주란을 기억하는 건 ‘백치 아다다’란 노래 때문일 텐데, 계용묵의 소설에서 제목과 내용을 빌려온 것이다. 소설 속 말 못하는 아다다의 결혼 운이 처음부터 나빴던 건 아니다. 첫 번째 남자는 돈이 생겨 다른 여자를 들이면서 아다다를 버리게 되고, 두 번째 남자는 그 돈(아다다에겐 불행의 씨)을 내다버렸다는 이유로 아다다를 바닷물로 차 넣는다. 아다다의 불행은 남녀가 욕망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상대가 첫 마음을 잃어버린 것도 이유가 될 것이다.

시인은 “요단강 뱃길”이 생사를 갈라놓을 때까지 문주란을, 문주란 닮은 아다다의 순정을 내치지 않겠다고 했으니 의리를 아는 사람이라고 해야겠다. 주전자에 물 올려놓고 가만히 백치 아다다를 불러본다. “꽃가마에 미소 짓는 말 못하는 아다다여. 차라리 모를 것을 짧은 날의 그 행복-”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