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오수전 / 김이듬

톰소여와허크 2016. 1. 6. 15:54

오수전(五銖錢) / 김이듬

 

주머니 속 동전을 만지작거린다

엄지와 집게손가락을 맞닿게 해 만든 동그라미

이거보다 작은 테두리의 청동 팔찌를 낀 말라깽이야

수천 년의 합장(合葬)이 즐거운 거니?

정말로 어떤 여자가 죽은 후까지 그 남자와 눕고 싶으리

쯧쯧쯧 동시동작 커피를 마시며 네 눈을 보며

옷을 벗으며 딴 생각을 하며 어떻게 한 사람만 사랑할 수 있을까

끝장날 시각을 기다리느라 꽉

물고 있었던 어금니는 잇몸을 잊고

박물관 유리관에서 썩어 가면 그뿐

발굴할 수 없는 시간 너머로 가고 싶은 나는

미리 끊어놓은 기차표 시각을 확인하지

급하게 뛰쳐나온 밤거리 널길처럼 어둡고

비는 여태껏 죽은 나무의 숲을 적셔대고 있네

나는 동전을 달그락거리며

무덤보다 깜깜한 세상 속으로 들어갈 택시

어떻게 합승이라도 안 될까 싶어 마구마구

손을 흔들며 발까지 굴러대네

 

*오수전 : 무령왕릉의 지석에 놓인 쇠돈 꾸러미, 토지신에게 무덤터 값으로 지불함

 

 

- 『별 모양의 얼룩』, ㈜천년의시작, 2009.

 

 

  * 1971년 도굴당하지 않은 무령왕릉의 발굴은 행운이었지만, 발굴 참사로 기억되기도 한다. 몇 년에 걸쳐서 현장을 보존하고 정리해야 할 것을 언론의 북새통과 경험 부족으로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유물을 수습해 버린 것이다.

  그 후 2009년에야 수습품 중에 뼛조각을 몇 개 발견했다고 보도가 나왔으니, “어금니” 한 개만 덩그러니 남았다는 것도 그런 사정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 같다. 지석(誌石) 내용만 볼 것 같으면 왕이 죽고 몇 년 후에 왕비가 합장된 것으로 보이나, 어금니로 추정한 여인의 나이가 17세 정도임을 감안하여 왕비든 궁녀든 순장녀가 있을 것으로 짐작하기도 한다.

  시인은 박물관 유리에서 예의 어금니를 보며, 순장녀를 생각한다. 죽음까지 따를 사랑은 없다는 게 시인의 생각이고 더 나아가 시인은 현실의 사랑도 미더워하지 못한다. 구속과 사랑을 동의어로 만들어 버리고 그 안에 갇혀 사는 삶에 대한 거부다. 조금 시니컬하게 말하자면, 사랑 없이 무덤 파는 꼴을 못 보겠다는 거다.

  순장녀는 어느새 어금니를 꽉 문 시인으로 바뀌어 익숙한 이곳을 벗어나 “발굴할 수 없는 시간 너머”로 뜨고 싶어 한다. 설령 “무덤보다 깜깜한 세상”으로 가더라도,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가는 길이라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무덤 속 여자, 빈손에 오수전 한 꿰미 들고 나온다면 갈 길이 더 많을 것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이 무덤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일 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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