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 노태맹
5월이 다 지나도록
아파트 화단 동백꽃이 지지 않는다.
져야 할 것이 지지 않으니
끔찍하고 불안하다,고
생각하는 건 확실히 강박장애다.
난 중력에 병들어 있는 거다.
동네 돼지 수육집 혼자 막걸리를 마시며
이제 아무에게도 나를 이해시키지도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건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革命이
붉은 날개를 달고 날아오르든
동백꽃처럼 그 자리에서 지지 않든
그건 동백이 가고 그 동백을 만나러 오는
봄바람의 몫이다. 모가지를 꺾고
붉게 데굴데굴 굴러다니는
봄바람의 동백꽃들 몫이다.
막걸리 잔에 앞머리 적시며 졸다가
나 문득 한 소식 본다. 사랑이란
그 사랑을 타인으로 놓아주는 것
지지 않는 동백꽃을
그저 붉은 동백꽃으로 바라다보는 것임을.
- 『푸른 염소를 부르다』, 만인사, 2008.
* 때가 되어도 “지지 않는 동백꽃”을 두고 시인은 자기 식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다가 그런 생각과 판단이 정당하지 않다고 여긴다. 자기가 아는 상식이 상식이 아닐 수도 있는 거다. 심지어 중력까지도.
동백꽃 피고 지고의 문제는 일차적으로 동백 스스로의 문제고, 그 다음엔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봄바람의 몫”이 있을 텐데 제 3자에 가까운 자신이 쓸데없이 간예하고 불안해할 까닭이 없다. 사랑도 그렇다. 자기 식의 사랑을 진짜 사랑으로 믿어 버리고 뜻대로 되지 않는 사랑을 불안해하고 원망하기보다 “그 사랑을 타인으로 놓아주는 것”이 필요하단다. 자기를 떠나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이 사랑의 본질에도 더 가깝긴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일절 관여하지 않는 세상이 무슨 의미가 있으며, 내 욕심이 들어가지 않는 사랑이 무슨 힘으로 영혼을 사로잡을 것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시인 역시, “누구에게도 나를 설명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면서 자신도 늙어갈 것임을 안다.
동백도, 사랑도, 혁명도 날 때가 있고 질 때가 있다. 내 소관은 아니지만 나와 무관한 것도 아니다. 그럼 어찌해야 하나. 시인의 이야기를 더 듣고 싶으나 막걸리에 앞머리를 적셔 가면서까지 얻은 생각을 쉽게 훔쳐낼 수는 없는 일이다.(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