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레서피 / 박시우
오밤중에 들이닥친 손님들 대접한다고 방장은 냄비를 꺼냈다 쇠젓가락 두 개를 전깃줄에 연결해 물을 끓이는 봄밤 소쩍새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물은 달아오르지 않았다 기다리다 못해 수프를 넣자 졸고 있던 방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건더기 미리 넣디 말랬디 뎐기 통하잖아 찌그러진 양은방죽 위로 감전된 길들이 떠올랐다 불어터진 목구멍으로 소쩍새가 다시 울었다
- 『국수 삶는 저녁』, 애지, 2015.
* 시집을 다 읽어 가는 동안, “지친 아내가 유리창에 습자지처럼 붙는다”(<국수 삶는 저녁>에서)는 표현에 이끌려 국수 삶는 저녁을 고민할 즈음, 마지막 라면 조리법에서 빵 터진 웃음에 빚져 국수 대신 라면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나의 웃음은 일차적으로 전기로 라면을 끓였던 이전의 경험에서 유도되었을 것이다. 화재 예방이니 뭐니 이런저런 핑계로 버너 등을 수시로 압수당하던 군 시절, 궁하면 통한다고 전기 라면으로 밤의 허기를 달랜 적 있다.(물론, 상병 이하는 냄새만 맡고 죽고 싶을 만큼 죽어 있어야 한다). 주의 사항은 단 하나, 한눈팔지 않는 거다. 누가 어깨를 친다거나, 잠깐 딴생각에 잠겼다가 자기력에 의해 숟가락이 붙기라도 하면 끔찍한 전기 쇼크가 기다리고 있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손님 대접한다고 너무 많은 물을 데우느라 집중력 흐트러진 방장에게 이물질(수프)을 넣어서라도 비등점을 당기려는 손님이 “뎐기” 한 방을 먹이고 만 것이다. 궁상맞은 상황이지만 웃음이 그 궁상을 가볍게 지나도록 하는 것도 사실이다. 솥 적다고 우는 소쩍새 울음소리처럼 허기와 궁핍이 짠하지만 유머가 이를 상쇄시키는 면이 있다.
그럼에도 이 시는 산뜻하다. 양은냄비 대신에 양은방죽으로 표현하여 울음의 공간을 넓히는가 하면, 불어터진 라면에서 “불어터진 목구멍”을 환기시키는 긴장감도 유지하고 있다.
어쩌면 웃음의 정체도 시인의 정성에 대한 반응이었는지도 모른다. 웃기려고 작정한 사람이 정말 웃기려면 삶의 슬픔을 배우고 그걸 자신의 양식으로 삼을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국수 삶는 저녁과 라면 레서피는 슬프거나 웃기거나 하면서 꽤 닮았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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