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산타 오다 / 조성화

톰소여와허크 2016. 2. 27. 02:22




산타 오다 / 조성화


시계를 삼킨 악어가 살아

나이 바퀴가 구르지 않는 세상

소원을 불어 풍선을 띄우면

팝콘 눈 터뜨리며

산타가 오는 줄 알았다


피터 팬이 네버랜드를 떠난

십대의 어느 겨울

일 년에 단 한 번

머리맡에 걸어 두던

헐렁한 양말 한 짝을 버렸다


세월의 담금질 속

삼십 년 째 씨를 뿌리며

더 이상 피지 않을

눈꽃을 기다리는

어른들의 공화국 사이로


나만의 산타는

마농의 샘을 뚫고

그렇게 내게로 왔다


- 『동그란 그대의 발꿈치가 보고 싶은 날은』, 한국문단, 2015.



  * 나이 들어서도 어린 시절에 집착하고 어른의 역할을 피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유난할 때 피터 팬 증후군이라고 한다. 원작 <피터 팬>에선 피터 팬이 네버랜드에 머물고, 웬디가 현실로 돌아온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웬디의 선택을 좇아서 마음속에서 피터 팬과 산타를 희미하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겠는데, 그게 간단하지 않은 모양이다. 시계는 삼켜도 꿈과 모험을 아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는 거다.

   시인은 십대가 지나면서, 산타의 선물을 기다리며 양말 걸어두던 시절을 졸업했지만 그로부터 삼십 년이 더 지나도록 또 다른 산타를 기다리고 있다. 시인이 “나만의 산타”로 특정하긴 했어도 그 실체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다. 다만, 마르지 않는 우물, ‘마농의 샘’처럼 시인에게 갈증을 해소하게 하고 끊임없이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원천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네버랜드엔 피터 팬이 살고, 어디랜드엔 산타가 살고, 대구랜드엔 시인이 산다. 주점 마농의 샘에 다 함께 모이면 재미날 것 같다. 엔딩은 갈고리 손에 팝콘 봉지 들고 찾아오는 후크 선장.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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