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양들의 습성 / 임채우

톰소여와허크 2016. 3. 10. 14:35

박흥순 작

 

 

양들의 습성 / 임채우

 

 

일전에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한 친구가 양에 대해 말했다. 미년생未年生 친구들이 모임에 잘 나오지 않아 나온 말이다. 양들이 무리 지어 사는데 더운 여름에는 달라붙고 추운 겨울에는 떨어진다. 이유인즉 여름에는 남 시원한 꼴 못 보고 겨울에는 남 따순 꼴 못 봐서란다. 얼마 전 몽고 민간대사라 칭하는 박 화백님과 자리에서 우연히 양들의 습성에 대한 얘기가 나왔는데 그분의 말씀은 전혀 달랐다. 양들이 여름에 달라붙는 것은 그늘을 만들어 다른 양이 햇볕을 피하게 하려는 것이고 겨울에 떨어지는 것은 소중한 햇볕을 가리지 않기 위해서란다. 글쎄 양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내가 양당 간의 어디에다 한 표를 던질 수는 없으나 양 하나를 놓고도 이렇듯 견해차가 크다.

 

- 『토끼의 뽀얀 연분홍 발뒤꿈치』, (사)우리시진흥회·도서출판 움, 2016.

 

 

  * 얀 반 에이크의 ‘어린양에 대한 경배’(1432년)에 나오는 양은 인간의 죄를 대신해서 제물로 나온 속죄양이다. 왜, 양이 인간 대신 피를 흘려야 하는지, 양이 달가워할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스럽긴 하다.

  얀의 그림엔 제단 위 양 한 마리가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지만, 실제 양은 “무리 지어 사는” 경우가 많고 그것도 계절별로 차이가 나는 모양이다. 천적이 활동할 시기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추측해 보지만 속속들이 알 수 없는 일이다. 위 시의 동창생과 박 화백의 견해도 그럴듯하다. 양들이 붙거나 떨어지는 습성을 두고 한쪽은 타인을 위하지 않는 인간 심리에 빗대어 이해했고, 다른 한쪽은 공동체와 개인을 폭넓게 고려한 지혜로운 행위로 이해하고 있다. 어느 쪽이든 자기 논리가 있지만,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진실을 말한 것은 아니다.

  흔히 쓰는 말 중에 ‘진실이 이긴다’고 하지만, 이기는 게 진실은 아니다. 한 발 물러서서 보편적 진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견해차”는 불가피할 텐데, 이를 인정하고 조정하기보다는 자기주장만 무한 반복하는 장면이 낯설지 않다. 불완전한 생각과 믿음을 자신의 한계로 열어두어야 마땅한 일이지만, 거꾸로 자신이 믿고 주장하는 것만이 참이라고 여겨서 생기는 문제일 것이다. 자신이 보고, 듣고, 이해한 것을 자기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만, 진실은 상대편에도 있고 어쩌면 어디에도 있지 않을 수도 있음을 간과한 것이다.

  양의 일은 양에게 묻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양도 잠시 의기양양하겠지만, 자신이 왜 피를 흘려야 하는지, 언제 붙고 떨어지는지 왜 그렇게 하는지 답을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할 녀석도 있겠다. 사람의 일도 모를 일 천지지만, 그래도 “양당 간”에, 좌우간에 한 표를 던지는 게 의리이겠다 싶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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