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퀴덩굴
납작한 풍경 / 김주애
며칠 내가 집에 없응께 집 터서리에 풀이 천지라 저것들은 잘 뽑히지도 안해여 뽑아도 뽑아도 뿌리에 흙이 타박하게 붙어서 잘 죽지도 안 한데이
채울 것 없던 헛간을 밀어내고 만든 텃밭
어머니 질긴 풀을 뽑으신다
저것들도 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게다
못 쓴다고 눈에 들지도 못하는 것들
질기게 살아야 씨라도 뿌리는 걸
되도록 납작하게 엎드려
콘크리트 담이라도 숨구멍이 있는 곳이면 뿌리를 내려야 하는 것을
봄날 따신 밥 위에 얹히지도 못한 독한 풀
납작하게 눌러 붙어 잘 잡히지도 않는 것을
한 줌씩 뜯다가 후벼 파다가
더러 뽑히기도 하다가
주절주절 할 말이 많아진다
끝끝내 고분고분하지 않은 몇은
땅을 움켜쥐고 멍울멍울 자란다
그래도 저것들도 희꾸무리한 꽃이 핀데이
- 『납작한 풍경』, 시와에세이, 2014.
* 가난이 질기다는 속담이 있다. 가난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가난 속에서도 어떻게든 살아가게 돼 있다는 의미로 더 많이 인용되고 있다. 앉은자리에서 뽑혀 나갈 위기에 처했거나, 콘크리트 틈을 비집고 핀 풀꽃 역시 악착같이 생을 잡고 질긴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
살다 보면, 하루아침에 텃밭이 생기고, 그 텃밭의 주요 작물이 되지 못하고 결실을 방해하는 잡초로 취급되는 불운이 온다. 어쩔 건가. 풀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풀의 처세는 “되도록 납작하게 엎드려”서 “땅을 움켜쥐고” 어떻게든 꽃을 피우고 씨를 뿌리는 거다. 풀꽃의 가난이 사람의 그것보다 좀 더 자유롭고 저항적으로 보이는 이유다.
가난을 달게 받지 않으면서 뿌리를 끝내 내주지 않는, “고분고분하지 않은 몇”은 “멍울멍울” 혹은 ‘울멍울멍’ 자라겠지만, 그 대가로 얻어낸 “희꾸무리한 꽃”이야말로 눈부신 생명, 그 자체라 하겠다.
봄날 쪼그려 앉아 냉이, 씀바귀, 별꽃을 헤는 사람이라면, 필시 그는 허우대 멀쩡하게 키워진 자랑보다 가난하고 납작한 풍경에 마음 쏠리는 사람일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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