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과 올무 / 이동훈
뒷산 외진 자락, 풀숲 사이 구붓한 오름길
마디숨이 거칠어지는 산이마 가까이
고라니가 겅중대고 새가 한소끔 날아오른다.
그 뜬 자리가 눈에 남아
골풀 비집고 가새풀 지나니
움퍽 팬 우물물이 바람에 이랑 짓고 있다.
얼기설기 놓인 자갈돌로 지난 인적을 짐작할 뿐
돌이끼 짙은 퍼런 물에 구름 한 점 돈다.
노란 입으로 재재거리는 기린초에 눈 맞추고
연분홍으로 수줍게 물든 이질풀에 입 맞추고
마음 한 자락 평화로이 놓다가
반대편 푸섶길, 노려보는 섬뜩한 눈에
덜컥, 잡히고 말았다.
뜯긴 다리 한쪽을 꽉 죄고
흰 이빨 번뜩이는 올무를 보고 만 것이다.
목 축일 우물이 죽음을 부르는 유혹이라니.
정나미 떨어져 돌아서니
기린초도 입 다물고 이질풀도 정색한다.
우묵한 우물엔
산짐승의 털과 질린 낯빛이 고여 있다.
일그러진 구름 한 점
바르르 떨다가 가까스로 우물을 피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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