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그 섬에 내가 있었네

톰소여와허크 2017. 2. 2. 08:19






김영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휴먼앤북스, 2004.



  제주를 사랑해서 제주로 건너가 제주만 찍다가 수만 통의 필름을 남기고 제주 두모악(갤러리)에 영원히 깃든 김영갑, 그의 사진 에세이다. “사진 속에 이야기의 원전이 들어 있고, 이야기 속에 사진의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는 안성수의 평 그대로다.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사진 찍고 사진 인화하는 데 모든 시간을 써버리는 사진가를 두고 주인 할머니는 빨갱이로 의심을 하고 끝내 이웃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애월읍 바닷가에 있던 그가 중산간 마을로 이사 가는 배경 이야기다. 이처럼 주변 환경은 열악했고 그는 내내 궁핍했다. 목숨 같은 필름을 습기와 얼룩으로 통째로 날리면서도 사진 외에는 다른 것을 생각지 않는다.

  “혼자선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늘 혼자이길 원했다. 혼자일 땐 온전히 사진에만 몰입할 수 있다. 남들이 일중독이라고 충고해도 웃어넘겼다. 중독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은 세상과 삶을 보고 느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양식이 떨어지는 건 걱정하지 않아도 필름과 인화지가 떨어질까 봐 두려웠다고 고백할 만큼 사진 일에 중독된 그는 자신의 사진이 남을 위한 사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어떤 식으로든 매년 전시회를 갖고, 그때 감상자의 상상력을 제한하지 않으려고 사진에 제목도 붙이지 않는다.

  “셔터를 누르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강렬한 그 순간을 위해 같은 장소를 헤아릴 수 없이 찾아가고 또 기다렸다(...)그 한 순간을 위해 보고 느끼고, 찾고 깨닫고, 기다리기를 헤아릴 수 없이 되풀이했다”고 하니 김영갑의 사진은 이런 인내와 몰입을 통해서 얻어진 것일 테다. 
 하지만 김영갑은 루게릭병으로 사진기를 들 힘을 잃고 만다. 필름과 인화지 걱정을 안 하는 대신, 자신의 사진을 남길 공간에 남은 힘을 다 쏟는다. 제주에 가면, 두모악에 들려야 할 이유가 생겼다.


 이생진 시인의 시집, 『인사동』에 김영갑 관련 시가 있어 여기에 옮겨 놓는다. 두 사람은 이생진 시, 김영갑 사진의 ‘숲속의 사랑’(1997)을 공동으로 엮은 바 있다고 첨기되어 있다. 파도소리에 귀 기울이는 엉겅퀴는 섬에 사진에 시에 미친 두 사람의 자화상이겠다.


마라도 엉겅퀴 / 이생진


마라도
파도소리와 푸른 광란에 밀려
김영갑은 결혼을 포기했고
나는 서울을 잊었다
하루 종일 들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소리
그로부터 10년 후
김영갑은 가고
무덤 밖으로 나온 엉겅퀴
파도소리에 미쳐
다시는 무덤 속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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