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미리, 『천 배의 바람을 품다』, 문학관, 2016.
- 저자는 두 권의 시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인의 아버지는 복숭아나무를 가꾼다. 남들 피서 떠날 때 가장 바빴다는 시인의 가족은 힘든 과수원 일을 접기로 의논이 되었으나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단다. 늙은 아버지가 이미 고목이 된 복숭아나무를 끝내 버리지 못해서다. 아버지와 복숭아나무는 내년에도 또 그 후에도 더 화사한 봄날을 함께 할 텐데, 아버지에게 복숭아나무가 있다면 시인에겐 글이 있다.
시인은 글로 봄을 만나 꽃을 피우고 싶어 한다. 이는 할머니의 유언이기도 하다. 손녀를 예뻐하던 할머니는 무엇이든 열심히 배우라는 말을 여러 번 들려준다. 시인이 된 손녀는 “돋을새김으로 한 줄 문장 새기는 날”을 꿈꾼다. 도서관에서 모네 관련 책을 읽으며, 빛과 명암에 관해서 이전의 화가와 구별되며 자기 세계를 구축한 모네처럼 자신도 “누군가 걸었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 누구나 사용한 단어가 아닌 나만의 새로운 단어를 구상”할 것을 생각한다.
할머니 동생의 영향으로 절에 다니는 중에도, 여행이나 일상의 소소한 경험 중에도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의미를 새기며 자신의 언어로 표현한다. 곡성 태안사에서 만난 삼층석탑에서는 “풍화된 탑의 낙수면이 있어 탑신이 보호되듯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낙수면 같은 따스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파블로 네루다의 시의 한 구절 “봄이 벚나무와 하는 것과 같은 걸 너와 함께”를 인용해서 ‘너’의 자리에 ‘글쓰기’를 두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천배의 바람을 품고 시인은 배움의 길에 있다고 얘기하지만 길로 나서려는 마음을 내는 순간, 시인의 바람은 이미 천배에 닿아있는 줄 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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