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오스터, 『달의 궁전』, 열린책들, 1997.
1인칭 화자이기도 한 포그는 자기 주변의 쓸쓸한 일들로 인해 실망스런 마음이다. 자신을 함부로 내팽개치다가 주위의 도움을 받기도 한다. 스스로 중심을 잡고 살아가려고 작정하지만 또 다시 우호적이지 않은 삶의 난관에 부딪친다.
제목이 된 '달의 궁전'은 중국 음식점 네온사인 글자다. 포그가 독립해서 자기 방을 얻어 나왔을 때 좀처럼 마음을 붙이지 못하다가 그 간판에 몹시 끌린다. 달의 궁전을 보며, "텅 비고 누추한 방이 별안간에 내면적인 장소, 이상한 징조와 신비롭고 종잡을 수 없는 사건들의 교차점"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고 실제, 소설 내용도 그와 같은 양상으로 전개된다.
출생의 비밀을 하나씩 알아가는 대목은 우연 속에서도 정교하게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다. 포그가 에핑을 알아가고, 에핑으로 인해 바브를 알게 되고, 이들 세 명의 관계가 상식 밖의 놀라운 일로 귀결되지만 내용 전개가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감탄을 자아내는 면이 있다.
어둠 속에서 달빛이 더욱 환하듯 생의 긍정적 신호를 기대할 즈음, 빛은 엉뚱한 곳으로 새거나 다시 어둠으로 떨어진다. 생은 기대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줄 알지만 저자는 이를 유머를 잃지 않으면서 천연스레 그려내고 만다. 구원의 여성상 키티가 한 번의 다툼 이후 더 이상 포그를 기다려주지 않는다든지, 에핑이 아내의 극적인 변화를 보면서도 다시 돌아오지 않을 여행을 감행한다든지, 뚱보 바버가 허리 골절 이후 체중 감량이 저절로 되다가 돌연 감염으로 이어지는 일들이 다 그러하다.
"우리는 언제나 잘못된 시간에 옳은 곳에, 옳은 시간에 잘못된 곳에 있었다. 언제나 서로를 놓쳤고, 언제나 간발의 차이로 전체적인 일을 알지 못했다"는 말처럼 삶은 불가해한 일 천지고 그만큼 삶의 조망도 어렵다. 또한 달의 궁전에 맘 설레는 일, 동굴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일은 낭만적인 재미를 더하는 요소라 하겠다. 그래서 "실패할 운명"인 줄 알면서도 여행을 떠나는 그 허무와 그 낭만이 삶을 고갈시키지 않는 두 엔진일 거라는 생각도 해보는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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