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항아리 / 박병대
너는 흙의 자식이다
허공을 끌어들여 더도 덜도 없는 어둠으로
드난살이 설움 가득한 순한 마음을 본다
달처럼 은은한 모습에 절로 평안하여
네 안에 내가 있노라 고백하노니
품고 있는 검은 달이 나인 줄 알아라
나도 흙의 자식이다
고요를 끌어들여 생명을 보듬고 허공이 되는
차지도 넘치지도 않는 빛바라기로 숨어서
어둠에 뜨는 밝은 달 바라보며
밝음에 뜰 수 없는 어둠으로 평안한
그믐 밤하늘에 뜨는 검은 달이다
너는 밝은 달 되어 어둠을 품고
나는 검은 달 되어 빛을 품는다
흙에서 태어나 흙냄새 풀풀 날리며
소박한 삶의 검푸른 빛으로 항시 떠 있는
밝은 달과 검은 달이 격렬한 고요를 풀어놓은
허공은 비릿하게 목마른 그리움이다
-『푸른 물고기의 슬픔, 도서출판 움, 2017.
* 이 시를 읽고 있자니 시인이 백자 항아리 전에 다녀왔을 것도 같고, 그냥 둥근 항아리 모양의 보름달을 보고 시상을 엮은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쪽인지 알 수 없지만 허공 중천의 달의 이미지도 가득하고, 그 보름달을 빼닮은 항아리의 이미지도 자꾸 겹쳐 생각난다.
달항아리에 반해 김환기 화가가 열심히 그림으로 그렸다면 최순우 미술사학자는 글로 달항아리의 아름다움을 기린 바 있다. 달항아리의 흰빛이 “마치 어느 시골 장터에 모인 어진 아낙네들의 흰옷 군상들”을 연상케 하고, 그 느낌이라는 것이 “아주 일그러지지도 않았으며 더구나 둥그런 원을 그린 것도 아닌 이 어리숙하면서도 순진한 아름다움”(『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중)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시인의 시도 그런 느낌이다. 너도 나도 “흙의 자식”이라는 정체성을 분명히 한 다음, 그 흙을 품고 환해진 달에서 “드난살이 설움”의 세월도 읽는다. 환한 것이 어둔 것을 품고 그 역도 어렵지 않으니 평화로운 정경임이 틀림없다. 아마도, 어둠을 탓하지 않고 빛을 품으려 살아온 삶이 투영되어서 그럴 것이다.
시인이 굳이 자신을 검은 달로 지칭하며 밝은 달 옆에 두려는 심사를 짐작하건대, 달에서 ‘어진 아낙네’의 모습 곧 자신의 아내를 떠올린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대상 없는 그리움이라고 말한들 손해날 일은 아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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