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나무 위의 아이 / 김개미

톰소여와허크 2017. 6. 16. 21:41




나무 위의 아이 / 김개미


이젠 밤이야

모든 것이 잠이 드는


집이 어둠 속으로 침몰해간다

지붕을 넘어갔던 새들도 다시 오지 않는다

나뭇가지를 밟은 아이의 맨발이

하얗게 빛난다


저긴 악마의 서식지야

어제 잡아먹은 아이를 오늘 또 잡아먹는 악마가 살아


아이는 미동도 않고 집을 내려다본다

아이의 입에서 몽글몽글

흰구름이 피어난다


어둠은 무섭지 않아

언젠가는 나를 받아줄 거야

여기서 뚝 떨어져도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 올 거야


악마의 아내가 문을 열고 나와

아이를 찾는다

그녀를 따라나온 불빛이 언덕을 내려간다


더 기다릴 거야

여긴 춥고 외롭지만

아무도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천사들을 만날 수 있어


나뭇가지 사이로 옥수수 알갱이 같은 별이 뜬다

황폐한 언덕의 주인인 바람이

아이의 이빨 사이사이를 행차하신다


- 『자면서도 다 듣는 애인아』,문학동네,2017.


 * 라임오렌지나무를 친구로 둔 다섯 살 아이 제제가 아버지에게 손찌검당한 채 몹시 앓아야 했던 소설이 생각난다. 아버지 입장에서야 가난한 살림에다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자신이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는 억울과 분노가 쌓였다가 우발적으로 표출된 것이기도 하겠지만 아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선한 의도를 정반대로 받아들이고 매질까지 한 아버지를 용서하기가 어려웠을 것이다. 아이는 나무에게로 와서 다독이는 말을 듣곤 했지만 그 나무도 곧 베어진다.

  시에 소개된 나무 위의 아이도 제제를 닮았다. 자신이 떠나온 집에 악마가 살고, 그 악마는 폭군으로 변한 아버지 얼굴을 하고 있을 수도 있겠다. 악마가 수그러들지 않는 나날은 괴롭고 쓰린 하루하루다. 괴롭다는 뜻의 한자어인 ‘곤’(困)이 생각난다. 困은 사방이 갇힌 곳에서 부족한 공기에 시달리는 형상이다. 나무도 사람도 그 안에서 질식하지 않으려면 최소한의 공기는 있어야 한다.

  이 시에서 나무와 어둠이 아이에게 공기를 주입하는 펌프라면, 천사와 별은 가슴에 와 닿았다가 사라지는 공기 알맹이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시에서 희망을 말하는 건 성급하다. 나무는 아이를 받아주지만 영구 임대는 아니다. 어둠은 아이를 가려주고 보료처럼 아이를 받아주기도 할 것 같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다. 천사는 필요할 땐 나타나지 않는 법이고 별은 멀리 있기만 하다.

  이빨을 부딪치며 떨게 하는 차가운 바람만이 제제 처지의 아이에게 놓인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 즈음, 시인은 이 부분에서 “바람이 / 아이의 이빨 사이사이를 행차하신다”며 조금은 장난스런 느낌으로 현실의 무게를 덜어내려고 한다. 아직, 동화를 놓지 않고 싶은 거다. 이어지는 동화 속에선 잠이 든 아이의 발을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 발씩 잡고 자기 눈물을 닦는 걸로 하면 어떨까.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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