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관/ 백석
명태 창난젓에 고추무거리에 막칼질한 무이를 뷔벼 익힌 것을
이 투박한 북관을 한없이 끼밀고 있노라면
쓸쓸하니 무릎은 꿇어진다
시큼한 배척한 퀴퀴한 이 내음새 속에
나는 그느슥히 여진의 살내음새를 맡는다
얼근한 비릿한 구릿한 이 맛 속에선
까마득히 신라백성의 향수도 맛본다
- 咸州詩抄 5편 중 1편 (《조광》1937.10)
* 백석은 거미 가족의 생이별을 걱정하고, 밥상 위 반찬도 동무로 삼울 줄 아는 시인이다. 음식에 관한 이야기도 곧잘 시에 담았는데, 국수 한 사발에 가족과 마을과 공동체의 역사까지 엮어서 맛나게 요리할 줄 안다. 북관도 그러한 시다.
국수란 단어 하나 없이 국수의 모든 것에 대해 얘기했던 백석의 시는 제목이나마 ‘국수’였다. 이 시도 음식 이름을 이야기하지 않고 시큼하고 얼근한, 퀴퀴하고 비릿한 맛과 향을 자극하는데 시 제목은 엉뚱하게도 ‘북관’이다. 음식 이름이 나와야 할 자리에 함경도를 지칭하는 북관이 불려와 음식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다. 먹는 것 하나에도 따뜻하고, 유머러스하고, 거창한 백석답다고나 해야 할까.
그럼, 북관은 어떤 음식을 염두에 둔 표현일까. 명태 창난젓, 고추 빻은 찌꺼기, 무를 비벼 익혔다고 하니 젓갈류가 아닌가 싶다. 생선에 약간의 소금과 밥을 섞어 숙성시킨 식품을 식해(食醢)라고 하니 명태식해라고 봐도 되겠다. 사실, 이 지역은 가자미식해가 유명하고 그쪽 표준어로는 가자미식혜(食醯)가 된다. 고춧가루와 무와 생강을 버무려 익히는 요리법은 안동식혜와도 유사하여 함경도와 경상도 사이 둘의 어떤 친연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좀 있다.
음식에 대한 이해와 의문은 이쯤 줄이고 다시 제목을 보자. 북관은 타지지만 정을 붙여 살면 고향이다. 태어난 평안도든, 살고 있는 함경도든, 연인이 있는 경상도든 마음 가는 곳은 다 고향이다. 명태식해를 마주하는 동안 백석의 마음은 고향에 있다. 고향 음식, 고향 사람……, 자꾸 흠흠거리게 되는 북관은 그리움의 또 다른 이름일 게 분명하다. (이동훈)
* 사진은 빌려서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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