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해변의 카프카

톰소여와허크 2017. 9. 23. 10:27



무라카미 하루키(김춘미 역), 『해변의 카프카』, 문학사상, 2003.


- 도쿄의 15세 소년, 다무라 카프카는 시코쿠의 다카마쓰로 가출을 감행한다. 소설가 프란츠 카프카가 권위적인 아버지로부터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면, 소설 속 다무라 카프카는 자신이 네 살 때 집을 나간 어머니로 인해 닫힌 세계에 사는 아버지로부터 떠나려 한다. 아버지를 해치게 되고 어머니를 품게 된다는 오이디푸스의 저주를 피하기 위한 가출이기도 하다.

책을 좋아하던 다무라는 다카나쓰의 고무라 도서관에 기거하게 되고, <해변의 카프카>와 조우한다. <해변의 카프카>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하나는 도서관 관리인이기도 한 샤에케의 음반이며, 다른 하나는 샤에케가 연인을 그린 그림이다. 다무라는 샤에케가 자신의 어머니일 거라는 생각을 점점 굳히게 되지만 그림 속 연인은 아버지가 아니라, 비명에 간 다른 남자다.

이 남자가 운동권 모임에 첩자로 오인되어 죽은 것에 대해서 작가는 도서관 사서의 목소리를 빌려 분노를 표시한다. 개별적인 판단의 잘못은 나중에라도 고칠 수 있지만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것이나 관용할 줄 모르는 것”의 행동엔 구원이 없다는 날선 감정까지 드러낸다. 그런 말을 내는 배경이 있을 줄 헤아리면 그만이지만, 이 일은 샤에케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버리긴 했다. 이후 그림자도 남의 반만큼만 되어 생기 없는 삶을 살게 된다. 이 소설의 또 다른 얼개로서 다무라와 비밀스레 연결된 나카타 노인도 그림자가 반쯤 없으니, 큰 충격이나 상처가 그림자의 반을 어둠 쪽으로 떼 가기 때문일 것도 같다.

삶과 죽음의 중간 지점 어디에서 다무라를 만난 샤에케는 <해변의 카프카>에 그려진 연인이 다무라이기도 하다며, 이 그림을 선물로 주고 싶어 한다. 현실의 도서관으로 와서 그림과 음반을 챙긴 다무라가 다시 도쿄로 돌아가서 터프한 15세 소년으로 살게 될 거라는 희망을 보이며 소설은 끝난다. 서두에 “이것 한 가지만은 확실해. 그 폭풍을 빠져나온 너는 폭풍 속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의 네가 아니라는 사실이야. 그래, 그것이 모래폭풍의 의미인 거야”라고 했던 말이 자연스레 귀결된 것이다.

해변의 카프카는 현실과 비현실, 자아와 분신, 과거와 현재가 섞이고 연결되는 상상적 요소가 많다. 앞서 “상상력이 결여된 속 좁은 비관용성”은 도서관에 들이고 싶지 않다는 내용이 있기도 했지만, 거꾸로 그런 사람일수록 마중하여 책이 주는 상상력에 흠뻑 젖도록 안내하면 좋을 것이다. 침대에서 벌레도 되어 보고 옥상에서 날개도 달아 보는 상상이 현실을 견디게 하고 현실을 바꾸게도 하는 것이니.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