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장(斷章) Ⅱ / 김민부
도미에의 목탄화(木炭畵) 속
에서였을까
그런 골목길…
살아도
여망(餘望)이 없는
황혼(黃昏)에
어디선가
개가 짖는다
여자는 창문을 열고
자꾸 기침을 하고
하수도 속엔
지난밤의
가을비가 울고 있었다
잎들을 떨구어 버린
가로수 아래
금방 죽은 새 한 마리의
눈동자가
황혼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 『나부와 새』,1968(『김민부 시선』,지식을만드는지식, 2012)
* 도미에(1808~79)는 ‘삼등 열차’(1862-3)로 많이 소개된 작가다. 술 마시는 사람, 피난민, 노동자의 모습 등 주로 하층민의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냈고, 신문 만평에서는 지도자를 풍자하거나 언론 자유를 주장하는 내용을 실어 감옥에 다녀오기도 한다.
고흐의 편지글에도 도미에의 작품에는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내용이 나오지만, “그의 무모한 익살은 오직 가면 / 이를 악물고 참는 고통이요 / 그의 심장은 따뜻한 햇빛으로 빛난다 / 천진난만하고 활달한 웃음 속에서”(‘도미에의 초상에 바치는 시’ 부분, 보들레르)라는 표현이 도미에의 생을 함축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김민부 시인이 본, 도미에의 목탄화가 어떤 작품인지 헤아릴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일단 뒤로 미루고 몇 자 적는다.
김민부 시인(1941~72)은 산복도로가 지나는 부산 수정동 출신이다. 최근 시인의 이름을 딴 ‘김민부 전망대’가 수정동이 아니라 초량동 이바구길에 마련된 것은 이곳에 좋아하는 애인이 있어 번질나게 출입했던 곳으로 알려져서다. 고등학교 때 신춘문예에 당선되고 시집 (『항아리』1956)까지 냈던 조숙한 천재는 방송국 프로듀서로 직장생활을 시작하지만, 의문의 방화로 죽는다.
그의 죽음을 자살로 보는 쪽은, 요절한 시인의 시에 유독, 죽음의 이미지가 많이 나타나는 걸 지적한다. 이 시도 그렇다. “여망이 없는/ 황혼”, “잎들을 떨구어 버린/ 가로수”, “죽은 새”가 죽음의 향수를 자극한다. 개가 짖고 여자가 기침하는 것이 생명의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골목의 어둠을 더 활성화시킬 뿐이다. 급기야 어둡고 부정적인 기류는 가을비 울음으로 수렴되더니 “황혼을 빨아들이”는 “죽은 새 한 마리의/ 눈동자”로 귀결되고 만다. 이처럼 이 시는 구체적인 내용 전개보다는 우울하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로 상황 자체를 응시하게 한다.
시인은 시의 방향이라 할 만한 「서시」에서조차 “나는 때때로 죽음과 조우한다”며 “어떤 날은 숨 쉴 때마다 괴로웠다/ 죽음은 내 영혼에 때를 묻히고 간다”고 했으니 시인 내면에 도저하게 자리 잡은 죽음의 그림자를 미리 밝힌 셈이다. 그의 비극적 인식이 어디에서 연유하고 어떻게 키워졌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예술가의 개성적 표현에 기대어 작품에 투사되곤 했을 것이다.
밝은 곳보다 어둔 곳을 천착한 것은 도미에와 다르지 않은 것 같지만 김민부 시인의 경우엔 생에 대한 의지가 결여된 느낌이 있다. 시인의 이른 죽음을 애도하면서도 풍자와 유머가 빠진 현실인식은 어둠의 농도가 훨씬 깊어져 자칫, 자신도 빠져나오지 못하게 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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