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에세이> 그토록 붉은 사랑

톰소여와허크 2017. 10. 30. 13:07




백중기, ‘봄날’(2017)


림태주, 『그토록 붉은 사랑』, 행성비, 2015.


 백중기 화가의 그림과 림태주 작가의 에세이가 만났다. 첫 장은 어머니를 여의고 평소 어머니의 말씀을 당신의 유서 형식으로 받아 적은 글이다.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은 담아두지 말고 바람 부는 언덕배기에 올라 날려 보내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라면 지극히 살피고 몸을 가까이 기울이면 된다. 어려울 일은 없다. 나는 네가 남 보란 듯이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억척 떨며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괴롭지 않게, 마음 가는 대로 순순하고 수월하게 살기를 바란다”는 내용은 어머니 말씀이기도 하겠지만, 저자의 인생관이 담긴 말로도 비친다.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에 얼마나 매여 사는지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 보는 게 정말 요긴한 일이 아닌가 싶다. 자신이 괴로워하는 그 일이 ‘부질없고 쓸모없는 것들’에 대한 집착 때문이란 것을 순간순간 깨닫는 것이 삶을 이전보다 자유롭고 평안하게 사는 비결인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절집에 머물며 밥 먹는 시간의 침묵을 불편해하다가 사흘째 되는 날, 비를 내다보며 밥을 먹게 되면서 어색한 시간으로부터 풀려나왔다고 한다. 이때 저자는 침묵으로 대화하는 법을 익히며, “내가 힘들어했던 건 침묵이 아니라,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라서였을 것이다. 꾸미고 지어내 나를 포장하거나 숨겨서 편안해져야 하는데, 전혀 속일 필요가 없는 그 상황이 오히려 당황스럽고 불편했을 것이다”라는 나름의 해석을 붙인다. 꾸미는 것도, 숨기는 것도 오랜 시간에 걸쳐 스스로 학습하여 자기화 되어버린 것이니 가면이 진짜 얼굴이 된 꼴일 수도 있겠다. 자연스러운 것이 가면이라면 슬픔 아니고 뭐겠는가. 지금이라도 슬픔을 덜기 위한 마음가짐이 필요해 보인다. 
 글의 끝은 다시, 어머니에 대한 편지다. “당신 덕분에 세상에 와서 나는 붉게 사랑을 했습니다”며 인연의 고마움을 전한다. 이다음에 이어지는 시편들도 결국, 사랑 이야기다. 그 중 한 편을 옮겨 적는다.


사랑하는 이가 내게 말했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겠다고

사랑할 때에만 유효한 그 말이
열흘을 붉지 못하는 꽃 같은 그 말이

단풍철이 오면 연연히 다시 살아와
나를 흔들고 뼛속의 우물로 고인다

나는 마르지 않는 붉은 사명을 붙들고
함부로 살지 않으려고 시를 쓴다

살기 위해 오늘의 밥을 먹는다
내가 살아야 그 사람도 살겠기에


 「붉은 사명」이란 시다. “당신이 죽으면 나도 죽겠다”는 말은 열흘만 붉은 꽃처럼, 말하는 그때의 진실만 담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연연히(娟娟-), 연연히(戀戀-) 또 연년이(年年-) 붉게 지피는 단풍으로 살아오는 말이니 어찌 명심하지 않겠는가. 강제성이 없는 사명이 더 순수하게 타오르는 것임을 깨닫는 시간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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