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도련님

톰소여와허크 2017. 11. 9. 15:30



나쓰메 소세키(육후연 역), 『도련님』, 인디북, 2002.

소설 속 ‘나’는 삼십 년 전의 톰(『톰 소여의 모험』1876)처럼 말썽꾸러기이고 덤벙꾼이다. 여기에 고집이 세고, 비위에 안 맞는 걸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가정 내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고아로 이모 집에 얹히어 살던 톰이 오히려 더 명랑하다고 해야겠다. 다만, 집안의 하녀 신분인 기요 할멈만 ‘나’를 감싸고 지지해준다. ‘나’가 여하한 경우에도 자존감을 갖고 세상을 헤쳐 나가는 힘의 배경이 있다면 할멈일 것이다.
어머니, 아버지의 죽음 이후, ‘나’는 형과 결별하고 시코쿠의 중학교의 수학교사로 발령나면서 독립한다.(시코쿠는 『해변의 카프카』에서 열다섯 소년 다무라 카프카가 가출해서 찾아간 곳이기도 하다.) 학교생활은 순조롭지 않다. 초짜 교사에 짓궂게 구는 학생들과 교사의 권위를 내세워 버릇없는 학생을 혼내려는 ‘나’의 부딪침이 아슬아슬하다. 팽팽한 기 싸움 중에 교무실 교사들의 이중적인 태도가 맞물리면서 한바탕 활극이 벌어진다. 말 잘하고 점잖은 빨강 셔츠(교감)나 거기에 빌붙은 알랑쇠(교사)는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는 부류로 보인다. 하지만 빨강 셔츠가 워낙 교묘한 데다 증거를 남기지 않고 둘러대기를 잘해서 ‘나’는 반격의 기회를 좀처럼 갖지 못하고 그런 중에 의지가 되었던 멧돼지(동료 교사)는 사표를 종용당한다. 끝내, 멧돼지와 ‘나’는 주먹다짐으로 분풀이를 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데 ‘나’는 기요 할멈이 기다리는 도쿄로 향한다.
‘나’가 빨간 셔츠의 그럴듯한 말에 넘어가지 않은 것은, <논리정연하다고 해서 다 좋은 사람이란 법은 없다>든지, <사람은 좋고 싫은 감정에 움직이는 존재다. 논리로는 움직이지 않는 거다>라는 평소의 신조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승진 제안이나 편의 제공에 전혀 마음을 쓰지 않고 언제든 사표 쓸 준비가 된 이유도 크다. 이 점이 ‘나’의 매력이면서 동시에 ‘현실적’이지 못한 느낌도 주는 부분이다. 사회적 지위란 것도 쉽게 버리기 어려운 것이겠지만 무엇보다 생계가 달려 있는 문제에 굴신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목소리도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나’가 봇짱[도련님]으로 인기를 누리는 비결을 생각해 본다. ‘나’는 어리숙해 보이지만 할 말은 하고, 머리보다 몸으로 깨우치는 스타일이다. '톰소여의 모험'에서 인디언 조를 향한 톰의 용기가 그랬듯이 유·불리를 계산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 순정하게 나설 수 있는 태도가 도련님의 참된 유산인 걸 알겠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