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기, '청사포의 봄'(2013)
정태규 지음 (김덕기 그림), 『당신은 모를 것이다』, 마음서재, 2017.
제주 곳곳을 사진으로 남긴 김영갑 작가는 루게릭병으로 셔터를 더 이상 누르지 못하는 순간까지 사진을 찍었고, 그 사진에 집을 만들어주는 일에 남은 근육을 소진했다. 김영갑은 오십을 못 살고 갔지만 갤러리 두모악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정태규 소설가도 루게릭병과 이길 수 없는 그렇지만 패배는 더욱 아닌 싸움에 하루하루 임하고 있다. 몸은 굳어서 손가락을 움직일 수 없고, 목소리를 낼 수도 없어서 아내와 간병인이 늘 옆에 있어야 한다. 그런 작가에게 선물이 있다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품”인 안구 마우스다. 눈 깜빡임으로 모니터의 글자 하나하나를 인식시켜 글을 쓸 수도 있고 그 글을 컴퓨터가 읽어 주어 대화도 가능하다. 페북을 통해 책을 소개하고 가벼운 인사말도 나눌 수 있다. 주위를 웃기는 농담까지 곧잘 한다.
가혹하면서도 공평치 않은 일들이 생길 때면, ‘신이란 게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을 듣게 된다. 이 질문엔 답을 갖고 있지 않지만, 신은 노력하는 자를 돕는다는 말은 어느 정도 수긍하는 편이다. 이 책은 작가의 글 솜씨, 가족의 보살핌, 문명의 이기가 한데 상승 작용을 한 결실이다. 무엇보다, 주어진 상황에서 더 나은 선택을 고민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을 하려는 작가의 노력이 이 책의 무게감을 천 년 고목의 그것처럼 깊게 드리운다.
글쓰기는 작가의 존재감을 가장 잘 보여준다. “글쓰기가 어쩌면 바위처럼 굳어버린 내 몸을 뚫고 내가 싹 틔우는 한 그루 나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작가는 믿는다. 사실, 단편소설 <모범 작문>에서 보여주듯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표현력과 억장 무너지는 고통 속에서도 삶을 긍정하려는 인생관은 독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아내와 함께 교정과 공원을 산책하며, 병의 진행과 그 끝을 예감하며, “아침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는 삶은 아니지만, 내 손으로 옷을 입고 밥을 떠먹는 삶은 아니지만, 새로운 질서 속에서 내 삶은 계속될 것이다. 그 삶은 이제 근육을 움직여 사는 삶은 아닐 것이다”라고 말한 뒤, “그러나 노루귀, 괭이눈, 복수초여! 근육이 없는 저 꽃들의 삶을 어찌 아름답지 않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하고 긍정의 마음을 갖는다. 오도 가도 않고 한자리에 앉아 안개와 비로 적시고 해와 바람으로 말리는 식물은 하나같이 아름답다. 식물도 작가도 다른 누구도 언젠가 기운을 더 북돋우지 못하고 쓰러지긴 할 테니, 그때까지 열심히 일하거나 마음을 고요히 하거나 할 뿐이다. 작가는 삶의 밀도를 생각한다.
“안중근 의사, 이태석 신부, 이상, 김유정, 이중섭, 김광석, 카프카, 고흐, 모딜리아니, 제임스 딘 등등. 그들의 삶의 가치가 삶의 길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밀도에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라고 언급하며 자신의 밀도가 아쉬울 뿐이라고 덧붙이기도 했지만, 독자는 근육이 있어도 이를 충분히 쓰지 못하는 개개인의 삶의 밀도를 생각할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밀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한 생이라고 의미 있게 삐딱해지는 사람도 있겠다. 그렇다 하더라도 책을 놓거나 잡거나 어느 순간에도, 영혼의 근육을 만들어가는 작가의 말을 귀 담아 듣지 않을 수 없다. (이동훈)
'감상글(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세이> 무서록 (0) | 2017.11.25 |
---|---|
<에세이> 엄마의 마음 편지 (0) | 2017.11.19 |
<소설> 도련님 (0) | 2017.11.09 |
<에세이> 소월의 딸들 (0) | 2017.11.04 |
<에세이> 그토록 붉은 사랑 (0) | 2017.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