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김 씨 표류기

톰소여와허크 2017. 12. 15. 08:20





김 씨 표류기(이해준 감독)



 신용불량자가 되어 한강 다리에서 몸을 던졌다가 무인도(사실은 오리배로 갈 수 있을 정도의 도심 근처의 조그마한 섬)에 표류한 김 씨. 그 김 씨를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여자. 영화는 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좇는다. 여자는 따돌림 당한 후유증으로 스스로를 격리시켜서 자기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컴퓨터 통신에서 아바타를 꾸미며 자신을 포장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소통만 하다가 또 다시 상처받기도 한다. 우연히 김 씨가 섬에 적응하는 과정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치유해 가게 된다. 
김 씨는 섬까지 떠내려온 짜파게티 수프를 보며, 실제 짜장면을 만들어 보기로 한다. 밭을 몇 이랑 만들고 새똥을 모아 땅에 심는다. 몇 달 후에 옥수수가 발아하고 마침내 열매를 찧고 반죽까지 해서 짜장면을 완성한다. 이 장면은 오롯이 자기 힘으로 세상을 헤쳐 나간 득의의 순간이다. 지켜보는 여자도 같이 눈물을 흘리며 성취감을 맛본다. 
하지만 태풍으로 김 씨의 밭은 폐허가 되고 김 씨도 섬에서 쫓겨난다. 여자는 김 씨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문을 열고 세상 속으로 뛰쳐나간다. 스스로를 긍정하고 삶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에겐 실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시 의미를 부여하고 시작하면 되니까. 그런 의미에서 김 씨와 여자의 새로운 삶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희망적이다. 
오늘 저녁엔, 짜파게티 한 봉지로 희망을 말하면 좋겠다. 졸시, ‘무인도’도 이참에 슬며시 꺼내 본다. 덕분에 한두 구절 고치기도 하면서.



무인도 / 이동훈

주머니는 비어도 입심은 불경기가 없어
술잔 따라 부딪치고 출렁거려요.
빈속은 쉬이 뜨뜻해지고 
스르르, 집도 아닌, 이부자리도 아닌 무인도로 가요.
톰 소여 되어 뗏목을 저어 가요.
로빈슨 크루소처럼 아예 표류해서 동굴 집에 살아요.
방구들 놓고 문짝 다는 건
술 마시는 일보다 쉬워요.
사과나무로 울타리 치고 산양을 잡아다 젖 짜면서 
내가 잊혀 가요.
주민번호, 비밀번호 다 잊고
휑한 잔고보다 더 가벼워져 가요.
별을 세다가 허크나 프라이데이 같은 벗을 그리다가 
고갤 젓기도 해요. 
두셋 모일 것 같으면 순서를 따지거나, 색깔을 구별하거나 
우습지도 않은 일로 다들 빨개지기도 하니까요. 
한때는 그윽했어도
술잔은 돌고 상황은 바뀌는 걸요. 
바뀌지 않는 건 주머니 사정뿐이죠.
간간이 젓가락 부러뜨리는 소릴 들으며
탁자 위 술병에 이마를 댈 즈음
출렁대는 모든 것들이 쓰러져 가요.
먼 바다 물켜는 소리가
눈꺼풀에 간질간질 닿았다 나가는
하룻밤 무인도가 뒤척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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