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영화)

해바라기(장양, 2005)

톰소여와허크 2017. 7. 4. 13:56



장양, ‘해바라기’(2005)

 

 

문화대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6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 아이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워하면서도 아버지가 밉다. 아버지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제동을 건다. 골목 놀이도 못하고 영화도 볼 수 없다. 대신, 연필을 잡고 그림을 그려야 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못다 한 꿈을, 재능을 타고난 아들이 이루어 주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들이 딴 데 눈을 돌려서는 안 된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의 꿈을 포기시키거나 아버지를 떠나려는 시도를 반복하지만 첫사랑도, 새로운 인생도 아버지의 벽에 가로막힌다. 아버지를 떠날 수 있었던 결정적 장면에서 아버지의 손을 단호하게 뿌리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행동을 아버지는 사랑이라고 믿고 아들은 아니라고 하지만 결국, 아들은 아버지 뜻대로 화가가 되었다.

아들 전시 그림(실제는, 장 샤오강 그림)을 본 아버지는 자신이 선택이 옳았다고 여기지만 아들의 반응은 미적지근하다. 그림은 가족사진을 옮긴 듯한 것인데 서로 닮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가족의 정을 우선 생각하게 되지만 그림 속 표정들은 경직되어 있다. 일그러뜨리거나 펴거나 웃거나 울게 하는 감정이 없다. 특히 영화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보는 그림 속 얼굴은 눈, , , 입의 윤곽이 흐리다. 바로 아버지의 얼굴이다. 또한 그런 아버지 밑에서 성장기를 보내고 어른이 되어가는 아들의 얼굴이기도 할 것이다.

뚜렷한 표정을 갖지 못한 얼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생기와 자유를 앗아간 아버지 또 아버지 세대의 가치관에 대한 슬픈 투영이 아닐까 싶다. 끝내, 아버지는 가족의 이해를 바라며 가출을 시도한다. 손주 출생에 맞춰 해바라기 화분을 보내온 것을 두고 아버지와 아들, 두 세대의 화해로 읽어도 무방하겠지만 약간의 불편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법을 몰랐지만 사랑이었다는 아버지의 말에서 나름의 최선을 다했다는 자부와 신념이 읽혀서다. 신념이나 원칙을 지키려는 태도도 필요하겠지만 그 신념과 원칙을 고민하는 데서 더 인간적이고 더 창의적인 삶이 가능할 것이란 생각도 있다. 강압적인 지시나 요구가 아니라 수용적인 자세야말로 사랑을 배우게 하고 이후 사랑을 실천하면서 살게 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아버지는 그러지 못했다. 이 반성은 어설픈 아버지로 사는 나의 것이기도 하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