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룡(김흥식 옮김), 『징비록』, 서해문집, 2014 개정증보판.
유성룡의 ‘징비록’을 읽은 저자의 감상은 ‘임진왜란 종군 기록’의 성격이 짙다는 거다. 유성룡은 전쟁 와중에 몇 번의 부침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 위치에 있었다. 뒤로 숨지 않고 전쟁의 파고를 피부로 체감하며 현장에 있었기에 생생한 기록이 가능했을 것이다.
왜군의 일방적인 승세 속에 첫 승리를 가져온 신각의 죽음은 드라마틱하다. 신각은 김명원의 부장이다. 한강 싸움에서 패하고 다른 데서 크게 공을 세워 이전의 실수를 만회했지만, 김명원의 상소는 일찍 들어가고 공적은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뒤에 명을 받지 못한 선전관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만다.
군기를 세우고 더 나쁜 상황을 막기 위해, 명을 따르지 않거나 살기 위해 도망가는 아군을 베는 장면도 곳곳에 만나게 되지만, 수첩에 이름을 적으며 보상을 약속하는 것이 더 큰 효과를 가져오는 걸 본 유성룡은 “난을 만난 백성들은 다그치기보다는 타이르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서 이후로는 매를 사용하지 않았다”라고 기록해 둔다.
이순신에 대한 기록도 빼놓을 수 없다. 명나라 수군 제독 진린이 파견되면서 이순신의 위상이 추락할 것을 염려했지만, 이순신이 자신의 공을 진린에게 전적으로 돌림으로써 진린의 인정을 받고 권위도 지켰다는 내용이다. 이 대목에서 애초에 원균에게도 그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공을 다투면서 원균과 사이가 벌어진 일, 그로 인해 백의종군하는 굴욕, 무엇보다 길어지는 전쟁과 패전으로 인한 백성의 쓰라린 고통을 다 겪었으니 말이다. 그렇지만 이 실패로부터 배우는 사람이 있고 실패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을 것인데 이순신은 전자인 게 분명하다.
유성룡은 동향의 김성일에 보낸 편지에서 이순신을 두고, “오늘날 무장 가운데는 그와 비교할 만한 사람이 없으니, 바다의 책임은 오로지 그에게 있습니다. 영공께서도 서로 협력한다면 유익한 점이 적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적는다. 두 사람이 초기의 서먹한 사이를 풀고, 다시 만날 기회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김성일은 2차 진주성 싸움에서, 이순신은 노량해전에서 전사했다.
유성룡은 전쟁의 전말을 소상히 남기고자 한 이유를, 《시경》에 나오는 “내가 지난 일의 잘못을 징계해서 후에 환란이 없도록 조심한다”는 말로 대신한다. 옮긴이 역시, 그런 마음과 글에 감동해서 이 글을 엮었다. 징비록의 이해를 돕도록 그림과 풀이를 곁들이며 지난 시간으로의 여행에서 현재를 읽기를 권하고 있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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