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책)

<소설> 초가집이 있던 마을

톰소여와허크 2017. 12. 9. 22:07




권정생,『초가집이 있던 마을』, 분도출판사, 1985.



이 책은 2014년 크리스마스 때 왜관 수도원에서 받은 것을 책장 뒤편에 묵혀두었다가 이후 세 번째 크리스마스를 목전에 두고 읽게 되었으니 괜히 송구해진다. 걸개그림으로 잘 알려진 홍성담 화가의 판화도 실컷 볼 수 있다. 표지 색이 강하다는 인상을 받는데, 이후 붉은색 대신 흰색으로 색을 뺀 게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서 더 좋아 보인다.

 

‘초가집이 있던 마을’(탑마을 : 권정생 선생이 살았던 안동 일직면에 조탑리 오층전탑이 있음)에 전쟁이 휩쓸고 지나가면서 많은 게 달라졌다. 어떻게 달라졌는지 가계 별로 적어본다.

 

유준, 유종 형제 - 피난 다녀옴.

복식, 문식 형제 - 미처 피난하지 못하고 남았다가 아버지가 인민군이 되어 월북. 복식은 군대 입대를 앞두고 자살.

학분 - 아버지, 어머니가 폭격으로 사망.

화순 - 피난 떠나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부역하게 되고 국군이 다시 들어오면서 다른 부역자들과 함께 총살됨.

금아, 금동 남매 - 금아는 피난길에 혼인식을 했으나 남편이 학도병으로 끌려가 전사.

종갑 - 아버지는 일제 때 징용되어 행방불명. 어머니는 친정 가서 연락 두절. 할매는 피난길에 죽고, 종갑은 미군 장갑차에 치여 죽고, 할배는 대추나무에 목을 매달아 스스로 죽음.


우리에게 전쟁이 무엇인지를 이렇게 가감 없이 보여준 소설도 드물지 싶다. 전쟁은 서로 총질해서 목숨을 앗거나 팔다리를 불구로 만들고, 이편저편으로 갈려 서로를 죽음으로 내몰고, 넘나들 수 없는 선을 그어 이산가족을 만들고, 살아남은 자를 고통 속에 지내게 한다. 또, 대개의 희생자는 전쟁을 원하지 않은 사람들이기도 하다.

전쟁의 피해를 입지 않은 사람이 없지만 특히나, 종갑이 운명은 왜 이리 징글징글한가.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인 종갑이는 굶주림 속에서도 쑥절편을 할매랑 나누어 먹기 위해서 참을 줄도 아는 철난 아이면서 그 또래답게 피난길을 소풍 가는 것처럼 즐거워하기도 한다. 미군이 던져주는 과자봉지를 먼저 잡겠다고 큰길에 나섰다가 변을 당했으니, 그 오십 년 후 효선이 미순이가 또 그렇게 죽어갈 줄은 생전의 작가도 전혀 짐작하지 못했을 것이다.

복식이는 군 입대를 앞두고 인민군인 아버지가 있는 쪽에 총을 겨누게 될 자신의 처지를 견디지 못한다. 그 누구를 향해서도 총을 들고 싶지 않다. 복식이는 “정말 우리는 이 이상 죄짓지 말자꾸나. 싸움을 하려거든 너를 올가미에 묶어 공갈치는 몰이꾼을 향해 싸워라”는 유서를 남기고 음독자살한다.

『몽실 언니』에서도 새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서 안정을 찾는 듯한 몽실이가 다시 힘든 시절을 겪는 계기는 아버지가 전쟁에 참전하면서부터다. 몽실이가 절뚝이는 다리로 세파를 헤쳐 나가듯 소설 속 문식이도 학분이도 화순이도 또 그렇게 세상을 살았을 것이다. 또 삼팔선 너머 북쪽 마을에서도 몽실이 문식이 학분이 화순이 같은 친구의 고생스런 삶이 이어졌을 것이고 이제, 그들의 아이의 아이가 커 가고 있다. 권정생 선생은 통일을 바라며 자신의 인세를 그 아이들을 돕는 데 보태라고 유언을 남겼지만 오가는 길이 점점 막히고 있으니 저승에서도 참 답답해할 것 같다. (이동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