ㆁ의 색 / 여연
학림다방에서 커피 한 잔 시켜놓고
가만히 학림을 소리 내 읽어 본다
학림을 읽으면 교태가 묻어난다
센소리와 흐름소리가
콧소리로 변하는 순간,
다방의 공기가 색을 품고 붉어진다
ㆁ은 자궁이다
화합의 동그라미다
끝소리 ㆁ은 자웅동체
합방의 색이다
내 왼쪽 옆자리에 남녀 한 쌍
여자의 웃음소리에 책이 묻었다
옛이응을 특별히 많이 쓰는 여자
코로 웃는 여자는 확실히 색이 짙다
내 오른쪽 여자끼리의 대화에서는
전혀 들리지 않는 소리
남자의 어깨에 기댄
ㆁ이 빚어내는 특별한 색
- 『ㆁ의 색』, 도서출판 움, 2017.
* 1956년 문을 열었다는 학림다방은 1965년 전혜린이 죽기 전 마지막에 들린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옛 서울대 ‘제 25 강의실’이란 별칭처럼 천상병, 이청준, 황지우, 김지하, 김민기, 유홍준, 홍세화 등 서울대 출신 예술가들의 흔적이 배인 곳으로 지금까지 용케 이어오고 있다.
시인은 옛 분위기를 더듬어 이곳에 들렀지만 옛 사람은 없고, 주변 분위기가 옛 기억을 떠올리는 데 방해가 되었을 성싶기도 하다. 하지만 결국, 시 한 편 건졌으니 유서 깊은 다방의 힘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겠다.
옛이응은 초성에도 음가를 주었지만 곧 사라지고 음절 끝에 남아서, 혀끝으로 목구멍을 막으며 코로 내는 소리로 적시되어 있다. 지금은 이응이 대신하고 있지만 시인이 이응을 버리고 옛이응을 고집하는 건 표기에 차이가 있어서다. 이응은 둥글기만 한 데 반해서 옛이응은 한쪽이 약간이나마 돌출되어 있으니 “자웅동체”, “합방의 색”으로 볼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색이란 것도 상대가 없으면, 또 상대가 나와 똑같다면 굳이 쓸 필요가 없다. 색은 색정(色情)이기도 하지만, 색깔이기도 하다. 이때 색깔은 생각의 다양한 결로 읽어도 좋을 것이다.
한쪽의 색만 써서는 상대의 색과 상생할 수 없으니 “ㆁ이 빚어내는 특별한 색”에 끌리는 건 자연스럽다. 앞서 학림다방이 학림(學林)의 어떤 뜻을 찾아 이름을 썼는지 알 수 없지만, 나무 한 그루 한 그루, 사람 한 명 한 명에서 배우려는 마음이 아닐까 넘겨짚어 보는 것이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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