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해송, 『아름다운 새벽』, 문학과지성사, 2000.
1959년부터 60년대 초까지 《사상계》에 연재된, 마해송 작가의 자서전적 이야기다.
작가는 어릴 때부터 무속, 부처, 개신교까지 어느 한쪽에 구애됨 없이 그때그때 믿음을 갖고, 어느 쪽이든 빌기를 잘한다. 명부에 십대왕이 있어 죽은 사람을 차례로 심판한다든지, 양푼만 한 둥근 거울로 전생의 일을 비추어 본다는 이야기는, 근래 개봉했던 영화 <신과 함께>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조혼 풍속으로 애정 없는 결혼을 했으나 부부 관계를 갖지 않고 도망치듯 집을 나온다. 서울서 통학하면서 만난 여교사와 연애감정을 갖고 일본 유학까지 인연을 이어갔으나, 여자의 전 남자 문제와 아버지의 반대로 갈라서게 된다. 아버지와 늘 대립하거나 아예 피하는 쪽이었던 작가는 아버지 장례를 치르며 그간의 감정을 풀고 오열한다.
건강 악화와 휴양, 아버지 죽음과 화해, 직장 일과 전쟁 체험 등의 과정을 거치며 작가는 가톨릭에 귀의한다. 폐병으로 병동에 있을 때, 위로가 되었던 동료 환자나 치료를 담당했던 원장, 간호사를 은인으로 생각한다. 특별나게도, 작가는 ‘역군은’이란 말을 좋아한다. “강호에 겨울이 드니 눈길이 자이 넘다 / 삿갓 비껴 쓰고 누역으로 옷을 삼아 / 이 몸이 춥지 아니함도 역군은 이샷다”(맹사성, 「강호사시가」중)에 나오는 역군은이다. 군(君)을‘임금’대신‘그대’로 보고 인연 있는 사람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을 담은 거다.
새로 새기는 역군은이 어떤 종교관보다 작가를 잘 보여주는 것일 테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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