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헌, 『古書 이야기』, 열화당, 2008.
- 저자는 고서점 호산방 운영자이자 기존의 영월 책박물관을 대신해서 삼례 책마을을 만들어가고 있는 주역이다.
이 책은 고서적의 가치와 고서적 거래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를 흥미롭게 소개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장정과 관련해서 관심을 가졌던 책 세 권에 대한 이야기도 빠짐없이 있어서 즐거운 마음이 컸다.
한 권은 구본웅이 장정한 임화의 『현해탄』이다. 1974년 경, 평소 출입하던 고서점에 고물장수가 다녀가고 서점 주인이 선택하지 않은 책들 중에서, 저자는 임화의 『현해탄』(1938)과 『문학의 논리』(1940, 김용준 장정), 정지용의 『지용시선』(1946, 김용준 장정) 등 수십여 권의 월북 작가의 책을 한꺼번에 건지는 행운을 갖는다. 책을 보는 안목에 따른 행운이지만, 월북 작가가 해금되지 않았던 시대현실과도 연관이 있는 것으로 저자는 책의 운명을 헤아린다.
또 한 권은 역시, 김용준이 장정한 『무서록』(1941)이다. 무서록이란 단아한 글씨 밑에 수선화의 흰 뿌리와 푸른 잎과 노란 꽃이 그렇게 예쁠 수가 없다. 글의 내용도 물론이거니와 이태준과 이웃하며 우정을 나누었던 김용준의 장정이란 게 실제보다 마음을 더 끌리게 한다. 월북 후 평탄치 않았을 두 작가의 운명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림은 밝기만 하다. 수필가 박연구는 저자에게 『무서록』을 사가면서 뒷날 자신의 수필에서 “김용준의 『근원수필』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무서록』을, 망설임 끝에 쌀 한 가마니 값으로 구입한 가난한 문사의 호사를 고백”한 바 있단다. 저자는 이를 고서를 잘 활용한 예로 꼽는다.
마지막 한 권은 이상이 장정한 김기림의 『기상도』(1936)다. 저자가 가장 인상적인 장정으로 여기는 책이다. “특정 사물의 형상이나 추상적인 문양에서 벗어나 표지 전체를 암회색 계통으로 일관하면서, 표제 외에는 아무런 장식도 문자도 보이지 않는 한 덩어리 어둠의 공간을 표현”하고 있다고 했지만, 흰 띠지가 색이 바래서 회색의 느낌을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더욱이 병과 가난으로 우울했을 이상의 말년을 상기하거나, 가족과 헤어져서 북으로 사라졌던 김기림의 이후 행로를 생각하면 암회색의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을 성싶다.
저자는 영월에서 폐교를 빌려 책박물관을 열었다가 이제, 완주로 옮겨와 양곡 창고와 일대의 부지를 얻어 삼례 책마을 조성에 나서고 있다. 그곳이 어디든 책이 존중받고 책이 읽히는 곳이 낙원이 아닐까 싶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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