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상글(시)

우포 / 남정화

톰소여와허크 2018. 5. 7. 08:33

우포 / 남정화


   구름이 내 몸속을 들여다보며 ‘상처’라고 말한다

   나는 한 번도 상처인 적 없었는데 그녀 한마디에 1억 4천만년 전부터 참아왔던 것인 양 한량없이 물꼬가 트인다

붕어와 입질하며 희롱하던 때도 그것이 눈물인 줄 몰랐다 사람들이 이리 가르고 저리 갈라도 그것이 당연한 줄 았았다 쪽지벌에서 날아온 청둥오리가 안부를 전해 주면 그냥 반가웠다 사지벌의 논병아리를 볼 수 없어도 팔자려니 했다

   나무벌의 어머니는 아직 안녕하신지 소벌의 동생네도 별고 없는지 푸른 수의를 주렁주렁 달고 늪에 갇혀버린 왕버들이 종신형을 맞는 중이다 어쩌면 그린 마일을 따라 십자가를 메고 가는 중이다 한 번도 독단적인 세계를 떠나보지 못한 것들이 우주의 중심에 서는 중이다 점액질의 끈끈한 액체 덩어리 고요히 침몰하는 중이다 심연의 깊은 줄이 나를 조이는 중이다 늪 속의 나는 발목을 저당 잡힌 채 화석이 되어가는 중이다.

   날갯죽지 퍼덕이며 경계를 넘나드는 새 떼처럼 다시 내 몸의 원형을 찾아 온전한 채 살고 싶다


- 『미안하다, 마음아』, 천년의시작, 2018.



  * 물결무늬화석 등으로 1억 4천만년의 나이를 헤아리는 우포늪은 네 개의 늪을 아우르는 말이다. 우포(소벌), 목포(나무벌), 사지포(모래벌), 쪽지벌이다. 쪽지벌만 포(浦) 이름이 따로 없는데 작다고 무시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이름을 빌리지 않고 더 대접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시를 읽는 것도 그렇다. 똑같은 시를 읽더라도 조금씩 혹은 전혀 다르게 읽기도 한다. 시에 대한 기호도 개인차가 있겠지만, 시인으로부터 자신에게 넘어온 물결무늬의 파장을 즐기며, 오래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생기면 좋은 것이다.

우포에 온 시인은 우포의 지형이나 생태에 대해 잘 알고 우포 이야기로 시종했지만, 이 시는 우포를 빌려 썼을 뿐 정작, 하고 싶은 이야기는 상처와 삶이다. 네 개의 늪은 지금껏 자신이 살면서 맺은 중요한 장면 혹은 관계의 부분 부분이되, 경계를 넘나들며 원만하게 화합하지 못하고 상처의 자국으로 남아 있다. 우포에 온 시인은 그간 애써 부인해 왔던 상처를 대면한 것이다.

어느 한쪽에 붙박인 왕버들의 처지는 “늪 속의 나”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독단적인 세계”에서 떠나보지 못한 존재들이다. 독단적 세계는 다른 선택지가 없는 유일한 세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주관적 편견에 사로잡힌 세계이기도 하다. ‘독단적인 나’가 되어 “우주의 중심”이 되는 길이 독단적 세계와 균형을 이루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또, 그런 지향을 갖고 있는 것이 세계를 견디는 법이기도 하겠지만 그 길이 쉽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한들 현재의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를 생각하면 다시 쓸쓸해진다.

시인도 이 세계가 버거웠을까. 늪으로 조금씩 가라앉는 자신을 느낀다. 단, 발목이 잡혀서 아래로 일방적으로 끌어당겨진다는 표현을 피하고, 저당 잡힌 걸로 말한다. 저당은 다른 약속을 이행하는 조건이다. 지난 상처는 없으면 좋을 일이지만, 그 상처는 인생을 더 깊게 보고, 더 성숙하게 살게 하는 밑천이기도 하다. 화석이 되어 굳어지는 자아를 느끼는 순간에도 화석에서 깨어나 날갯죽지를 퍼덕일 힘과 자유도 동시에 감지한다. 스스로 경계 안에 갇히지 않고 의식의 이쪽저쪽, 삶의 이모저모를 부지런히 탐구하는 게 시인이 둔 약속일 수도 있겠다.

이 시엔 우포의 구름, 우포의 바람, 우포의 물결이 닿았다 가는 물결무늬가 느껴진다. 다음엔 우포에 혼자 가도 좋을 거 같다. (이동훈)




* 사진- 목포제방 가는 길의 왕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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