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지에서 / 엄원태
1
온난화 조차지(租借地)처럼 변해버린 허드슨 베이, 겨울 한 철 제외하면 더 이상 북극곰의 제국이 아니다. 안 그래도 북극곰은 고독한 짐승. 너무 외로워서, 고독의 총량이 무려 구백 킬로그램에 달한다. 그래서 화이트아웃과 물범의 잠을 그리워한다. 하지만 극지의 봄은 따뜻해서 겨울이 다시 돌아올 때까지, 오로지 제 몸에 저장된 고독을 태우면서 버텨야 한다. 가을이 끝날 무렵이며 북극곰의 고독은 기껏 삼백 킬로그램 정도로 비쩍 말라붙는다. 북극토끼나 사할린뇌조는 그동안 세 번 몸을 바꿔야 한다.
2
얼룩물범도 외롭기는 마찬가지다. 너무 외롭고 심심해서, 물범은 애써 잡은 먹이 목도리펭귄을 갖고 논다. 상처 입은 먹잇감을 수면에 가만히 띄워놓고 무슨 공처럼 입으로 톡톡 치며 논다. 그 방심의 순간, 펭귄은 죽을힘을 다해 육지로 도망친다. 하지만 이미 치명적인 상처를 입어, 붉은 피로 가슴이 물든다. 도적갈매기들이 이를 놓치지 않는다. 물범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더 많이 먹으려면 외롭더라도 물속 깊이 숨어서 먹어야 하는 거다.
3
내 외로움은 덩치가 북극곰만하다.
무려 구백구실 킬로그램에 이른다.
하지만 내겐 갖고 놀 목도리펭귄이 없다.
『먼 우레처럼 다시 올 것이다』, 창비, 2013.
* 지구온난화가 북극의 생태에도 변화를 주고 있다. 얼음이 일찍 녹으니 얼음 속에 새끼를 놓고 키우는 물범의 활동이 위축되고, 그 얼음 속 물범을 사냥하기도 하면서 얼음 위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던 북극곰은 더더욱 곤란을 겪고 있다. 구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몸무게가 삼백 킬로그램으로 쭉 빠지는 사정이 이런 생태 변화와 위기에 적응하는 과정이기도 할 텐데 시인은 별쭝스럽게도, 무게 변화를 고독으로 치환해서 읽는다.
몸을 태우다가 바짝 여윈 고독은 얼룩물범도 예외가 아니라서, 손에 든 먹을 것을 허망하게 놓치기도 한다. 그럼, 고독은 한 끼 식사나 생계보다 깊은 건가.
양치기 소년이 세 번이나 거짓말을 하게 된 것이 외로움 때문이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유행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말끝에 “고독해서”란 말을 붙이는 게 낯설지 않다. 고독해서 사랑하는 것이야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전쟁도 고독해서 하고, 정치도 그렇단다. 일을 열심히 하는 것도 고독해서고, 일을 열심히 안 하는 것도 고독해서다. 밥을 많이 먹는 것도, 밥을 적게 먹는 것도 다 고독해서 그렇다는 말을 듣는다. 그런데, 이 말들이 얼토당토안한 거냐 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는 데 개개인의 삶에 침투하는 고독의 크기를 가늠해보게 된다.
시인도 자신의 외로움이나 고독의 크기가 상당하다고 밝히는 데 주저함이 없다. 주변에 외로움을 덜어줄 만한 대상도 없단다. 이 외로움은 인간관계에서 빚어지는 감정의 결이라기보다는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우주에 내던져진 ‘단독자’로서의 고독을 말하는 것도 썩 내키는 답은 아니다. 고독도 설명하자면 애매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시인은 그 애매한 사이를 비집고 의미 있는 흔적을 남기려 고투 중이다. 삶의 극지에서, 아주 드물게는 스스로 극지가 되어 시를 건져 올리는 경우도 없다고는 못하겠다.
고독해서 쓰는 거냐고 물으면, 고독해서 읽기도 한다고 고독이 고로 독(讀)이지 않느냐고 말하련다. (이동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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